양성환 목사(미주성결교회 메드포드 한인교회)
공권력에 의해 흑인의 죽음이 유독 미국에서 자주 일어나고 있다. 백인 경찰에 의한 흑인 사망 사건으로 엘에이, 뉴욕, 시카고, 텍사스 그리고 뉴저지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미국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경찰의 잔혹성은 모든 인종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고 있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그 자체로 인해 백인들은 습관적으로 자신의 내부로부터 차별적 감정이 생겨난다. 백인들은 차별적인 대상인 대상을 향해 불관용이나 의혹, 무관심, 비정한 태도를 보이며 야만적인 행동을 하게된다.
20세기 전반에 흐르던 인종차별주의적 편견을 지금까지도 극복하지 못했다. 나치의 인종학살에 반대해 해방군으로 제 2차 세계 대전에 참여했던 미국 역시 1960년대까지 흑별 차별의 야만성을 극복하지 못했다.
개신교의 영적이며 정신적 지주처럼 여기던 마틴 루터도 인종차별주의자였다. 루터가 1543년에 쓴 “유대인들과 그들의 거짓말”이라는 소책자를 보면, 유대인들을 “독사의 새끼”라 불렀다. 게다가 “눈먼 소경이며, 기만과 속임수와 신성모독을 일삼는 자들”이라고 저주했다. 루터의 개혁의 성지 비텐베르크성 안에 세워진 한 교회의 외벽에는 700년도 더 되는 “유대인의 암퇘지”라 불리는 부조물이 새겨져 있다. 루터나 나치주의자들은 이 유대인을 사람이 아닌 더러운 돼지라 여겼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미주에서 민주주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브라함 링컨도 그의 글과 대담을 자세히 보면 인종차별주의자였다. 그는 북부 연합의 결속과 남부의 결집을 파괴하려는 정치적 전략으로 노예해방을 지지했던 것이지 흑인을 백인과 평등한 존재라 여겼던 인물은 아니었다(chicago press and tribune, 21 sep. 1858).
매우 충격적인 일이다. 종교개혁자도, 민주주의 아버지도 인종차별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8세기에 와서 퀘이커들과 웨슬리가 비로소 참다운 인종차별를 반대했다. 웨슬레는 1774에 노예제 폐지에 대한 소책자를 발간했다. 웨슬레는 하나님과 영적교제를 나누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웨슬레는 당대의 성차별문화를 넘어 여성의 영적 지도력을 인정하는 페미니스트이기도 했다. 우리는 기독교인으로서 관용를 넘어 모든 생명을 귀히 여기는 존경로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