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문학 산책)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
2020/02/20 10:32 입력  |  조회수 : 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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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 목사(World Share USA)
 
 어느 날 어느 도시에서 운전을 하던 남자가 갑자기 차를 멈춥니다. 길 한복판에 차가 섰으니 난리가 났습니다. 뒤에 있던 차들이 소리를 지르고 어서 가라고 소리를 쳐도 남자는 운전을 못합니다. 알고 보니 운전하던 남자가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게 된 것입니다. 잘 보이던 눈이 갑자기 모든 세상이 백색으로 보이게 된 것입니다.

 남자는 운전하다가 갑자기 시각 장애인이 되어 세상 당황하게 됩니다. 갑자기 앞을 보지 못하게 된 남자가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모를 때 어떤 남자가 등장합니다. 그 남자가 운전을 해서 눈먼 남자를 집에다 데려다 줍니다. 그러나 그 남자는 도둑질을 하기 위해 시각 장애인이 된 남자를 이용했습니다. 여하간 고생 끝에 집에 돌아 온 남자는 다음날 병원에 찾아갑니다.

 장애인이 된 남자를 의사가 검진을 하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눈은 정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백색으로 보이기 때문에 아무 것도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남자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기가 막히게도 온 시민이 시각 장애인이 됩니다. 눈먼 남자의 아내, 눈먼 남자를 집에 데려다준 사람 나아가 이 남자를 진찰했던 의사도 시각 장애인이 됩니다.

 눈이 멀게 되는 것이 전염병처럼 퍼집니다. 눈먼 자들이 도시에서 연쇄적으로 발생합니다. 소위 백색 질병에 감염된 사람들이 하루에도 수백 명이 늘어납니다. 발병 원인은 알 수 없고 갑자기 눈이 멀게 되는 병의 특성 때문에 사회 전반에 공포심과 불안은 확산되고 사회질서가 급속하게 붕괴됩니다. 사회는 공포의 도가니에 휩싸입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이 괴 유행병에 정부가 대처한 방법은 오직 하나. 감염자들을 수용소에 가두고 총을 든 군인들을 시켜 감시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안과 의사도 이 병동에 수용되는데 그의 아내는 정상적인 눈이었지만 남편과 함께 격리 수용소에 따라갑니다. 그녀는 눈이 보이는 정상인이었지만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 시각 장애인인척하며 병동에 수용되었습니다.

 수용소에 수용된 시각장애인들이 처음에는 소수였는데 점점 늘어납니다. 수 십, 수백 명으로 늘어납니다. 그렇게 점점 시각장애인들이 늘어나자 수용소에서는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눈이 보이지 않으니 시각장애인들은 음식을 제대로 먹기 힘들고 씻기도 힘듭니다. 눈이 보이지 않으니 똥오줌도 제대로 가리지 못해서 여기저기 오물이 넘칩니다. 수용소 전체가 지독한 오물 냄새에 찌듭니다. 악취가 코를 찌르고 서로 다투고 서로 고성을 지릅니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입니다.  

 그래도 눈이 보이는 의사의 아내가 급한 일들을 처리합니다. 그녀의 수고와 노력 덕분에 수용소는 근근이 유지되고 사람들도 상황에 적응을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환자들은 더 많아지고 정부의 통제가 통하지 않습니다. 정부는 음식만 배급하고 시각장애인들을 방치하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입니다. 심지어 밖으로 나올려는 시각장애인들을 군인들로 하여금 사격하게 합니다. 그 눈먼 사람들에게 총격을 가합니다.

 그러나 앞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은 반항도 못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점점 사람들은 미쳐가기 시작합니다. 더 이상 법규가 통하지 않는 사회가 돼버린 병동에서는 눈이 안보임에도 불구하고 힘을 모아 권력을 남용하려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수용소는 그야말로 통제 불능 상태입니다. 더 이상 정부의 통제도 없고, 눈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무슨 짓을 해도 부끄럽지도 두렵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 의사와 아내 그리고 같이 수용된 시각장애인들 일부는 사람답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서로를 돕습니다. 부당한 폭력에도 맞서 싸웁니다. 의사의 아내는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용감하게 싸우기 시작합니다. 결국 폭력을 행사했던 집단은 죽거나 도망가고 의로운 싸움이 승리하게 됩니다. 그리고 군인들마저 이 전염병으로 실명하여 더 이상 군인들이 병동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군인들이 지키지 않는 수용소 문은 열리고 눈먼 사람들은 자유롭게 도시로 돌아갑니다.

 도시에 돌아온 사람들은 앞을 보는 의사 아내를 따라 피난처를 찾습니다. 소설의 제목처럼 도시는 이미 눈먼 자들의 도시가 되어 버렸습니다. 눈먼 자들이 차고 넘칩니다. 도시는 엉망진창입니다. 도로에는 자동차들이 멈춰 있었고, 사람들이 길바닥에 아무렇게 누워있거나 여기저기 다니며 먹을 것을 찾습니다. 그들은 앞이 보이지 않아 소리와 냄새를 따라 다닙니다.

 의사의 아내를 따라 수용소를 탈출한 생존자들은 눈이 보이는 그녀 덕분에 음식도 구하고 안전한 집에서 머물게 됩니다. 그들은 그렇게 잠시나마 자유와 평화를 느끼며 폭풍 속의 고요 같은 행복과 안정을 누립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처음 눈이 멀었던 남자가 갑자기 다시 앞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처음 발병했던 남자의 시력이 회복되면서 다른 사람들도 눈을 뜨게 됩니다. 다시 보이기 시작한 남자는 생존자들과 기쁨을 나누며 자신의 아내도 다시 보게 됩니다. 잃었던 시력을 회복하는 사람들로 도시도 회복됩니다. 모두 눈을 뜬다는 희망적인 결말로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이상은 거칠게 정리한 포르투갈의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주제 사라마구를 세계적인 작가로 다시 확인 시켜준 소설 ‘눈먼 사람들의 도시’ 줄거리입니다.

 작품이 주는 메시지는 아주 분명합니다. 먼저, 주제 사라마구는 ‘눈먼 사람들의 도시’를 통해서 전염병의 위험성을 경고합니다. 전염병의 파괴력과 공포감에 여지없이 무너집니다. 인간성이 파괴되고 도시 질서는 무너집니다. 수용소 안에서는 지옥과 진배없는 잔혹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전염병의 무서움을 뼈에 사무치도록 가르쳐 줍니다.

 둘째로 본 작품은 처절한 절망의 상황에서도 사랑과 헌신은 빛남을 가르칩니다. 아울러 그 사랑과 헌신으로 위기를 극복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모든 사람들이 시각장애인이 되는 무서운 전염병의 해결책은 사랑과 헌신이었습니다. 너무나 뻔한 설정이지만 진부하지 않습니다. 사랑과 헌신은 언제나 감동의 향기를 주는 인생의 해답입니다. 무서운 신종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지금이야말로 사랑과 헌신이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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