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수 목사(익산봉곡교회 원로)
우리 민족의 고유 명절, <설>을 앞에 두고 있다. 벌써부터 재래시장이나 대형마트에서는 설 명절 대목을 앞에 두고 상품 선전에 여념이 없다.
설 명절을 손꼽아 기다리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명절을 앞에 두면 일찍부터 명절 준비에 여념이 없으신 할머니와 어머니의 모습을 뵐 수 있었다. 5. 60년대 어려운 시절,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명절이 다가오면 명절음식을 준비하시기 위해 한과(부수개), 강정(백산), 조청 등을 만들기 위해 분주하셨다. 한과를 만들기 위해서 따뜻한 방바닥에 건조를 위해 널어놓은 것을 한 두 개씩 슬쩍 훔쳐서 화로 불에 올려놓아 부풀어 오르게 해서 먹을라치면 그렇게 맛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것도 자주하니까 숫자가 줄어든 것을 아신 어머님께 꾸중을 듣기도 했는데 지금은 어머님의 꾸중이 그립다. 식량이 부족한 때라 쌀로 조청을 만들지 못하고, 고구마를 주원료로 조청을 쑤어서 쌀을 튀기고, 콩을 볶고, 참깨, 들깨를 볶아서 강정을 만들 때, 그 옆에서 떨어진 모서리 부분을 맛있게 먹던 일, 한 시루 쪄서 금방 꺼낸 찰떡을 조청에 찍어서 맛있게 먹던 그 맛이 그립다. 그리고 섣달 그믐께가 되면 살던 곳이 시골인지라 목욕을 자주 하지 못하고, 항상 명절을 앞에 두고 목욕을 하는데 마땅한 시설이 안 되어 있으니까 부엌에서 큰 가마솥에 물을 데워서 드럼 통을 반절 자른 큰 통에다가 물을 담아놓고 그 통속에 들어가 실로 오래간만에 몸을 깨끗이 씻는 행사를 하곤 했다. 거치른 손(시골에서 일을 많이 하심으로)으로 어머님께서 온 몸을 구석구석 닦아주셨는데 그 까칠 까칠한 어머님의 손길이 생각난다. 그리고 설빔으로 새 옷, 새 양말, 새 신발을 사다 주시면 그 옷을 입고 잠을 설치며 그렇게 좋아했던 일 들, 혹시라도 새 옷을 사다주시지 않은 때는 그것이 속이 상해서 며칠씩 시무룩하게 지냈던 기억도 있다. 명절 날 아침 모든 친척들, 식구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차례를 지내고, 한 자리에 모여서 아침을 먹을 때, 참 기름을 발라서 화로 불에 구운 자연산 김(넓고 긴), 한 장씩 분배를 받아서 조금씩 잘라서 밥을 싸서 맛있게 먹던 일, 조기 한 두 마리 구운 것을 나누어서 할머님과 어른들은 가운데 좋은 것을 드시고, 아이들은 꼬리부분이나, 조기창자를 주시면서 이것 먹어야 머리가 좋아진다고 하시면서 주셔서 그것을 명절 때마다 막내인 내가 도맡아 먹던 일(그래서 머리가 좋은지(?)는 모르지만), 아침을 먹고 나서 마을을 다니면서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고, 친구들과 연을 날리며, 뒷동산에서 글러브, 배트 없는 야구를 편을 갈라서 재미있게 하던 일, 학교 운동장에 가서 새 옷이 더럽혀지는 것도 모르고 친구들과 축구를 재미있게 했던 일, 명절 지나가는 것이 아쉬워 정월 대보름 까지 친구들과 어울려 함께 놀며, 정월 대보름날은 달집을 태우며 숯 검댕을 서로의 얼굴에 바르고 집집마다 다니며 각종 찰밥을 얻어서 모두 함께 둘러 앉아 맛있게 먹던 일들이 모두 아련한 추억들이 되었다.
이제 고향을 가노라면 사랑하는 부모님들은 벌써 하늘나라로 가셨고, 세배를 받으셨던 마을 어른들도 모두다 세상을 떠나셨고, 개구쟁이로 즐겁게 지내던 죽마고우 친구들은 이제는 대머리의 나이든 모습으로, 힌 머리가 검은 머리보다 더 많은 중년의 모습으로 변해버린 모습들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벌써 우리 곁을 떠난 친구들도 있다. 이제 고향은 명절이 되면 집집마다 자가용들이 몇 대씩 마당을 채우고, 먹는 음식도 풍성해지고, 생활들이 모두 좋아졌는데 세월이 그래서 그런지 세배하는 풍습도 없어지고, 옛 날 재미있고 마음 설레 이던 명절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과거에는 세배 돈 같은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세배 돈에 관심이 많아서 정략적으로 명절에는 한몫 챙기려는 꾀 많은 어린 친구들이 많아지기도 했다. 그래서 명절 때는 세배 돈을 좀 두둑하게 준비해야 인기 좋은 사람이 되는 명절이다. 그래도 설 명절이 있다는 것, 그래서 오래간만에 그리운 친척, 친구들을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귀한 일이다. 안타까운 현실은 아직도 통일이 안 되어서 남북으로 흩어져 있는 이산가족들의 아픔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서 빨리 남북통일이 이루어져 복된 만남들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그리고 형편상 고국을 떠나 머나먼 이국땅에서 명절을 맞이하는 해외 동포들도 모두 여건들이 좋아짐으로 그리운 고향들을 오가며 명절들을 보냈으면 한다. 즐겁고 복된 설 명절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