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자

 

누군가 떠날 때마다“민둥산” 같은 마음이 숲길을 더듬는다. 은행나무집 돌담은 허물어지고 탱자나무도 간 곳이 없다는데 만추晩秋의 기억은 낙엽을 밟으며 동산길을 오른다. 우두커니 서있는 등 굽은 소나무는 시름들이 첫눈을 맞고 있는지 모르겠다. 늙은 상수리나무 아래 지천으로 널브러진 도토리들도 타오르던 만산홍엽도 백설에 묻혀 대지로 돌아갈 것이다. 사랑하는 이들이 잠든 숲은 고요하고 돌아오지 않는 생사의 경계에는 바람 소리만 애처롭다.

 그렇게 먼 길을 가시려고 꿈길로 구름 길로 넘나드셨나 보다! 기억의 끈을 놓아버리고도, 유선으로 안부를 여쭙는 제자의 이름을 부르며 반가워하시더니 한마디 말도 없이 황망이 떠나셨다. 시집詩集을 내려면 원고를 먼저 보내 보라고 하시던 선생님! 이제 누구에게 원고를 보여드려야 하나요? 올해는 꼭 다녀가라 시던 따스한 여운이 허공을 맴돈다. 좀 더 자주 찾아 뵈었어야 했는데… 때늦은 후회와 송구함이 그렁그렁 맺힌 눈시울에 고향산천이 드러누웠다.

 조롱박도 없는 심중에 갈잎처럼 동동 떠다니는 사무침은 어쩌라는 것인지?  애달픈 심사야 돌바닥이라도 닦자! 설움처럼 쏟아지는 빗줄기 아래서 물 세척기를 이리저리 끌고 다녔다. 세찬 물줄기가 지나갈 때마다 세월에 찌든 이물질들이 벗겨져 나가고 돌들의 뽀얀 속살이 드러났다. 빗물 눈물에 흠뻑 젖긴 하였지만, 돌들이 깨끗해지듯 심중의 묵은 것들을 토로하는 여린 속내는 뼛속까지 후련했다! “본향으로 가는 길이 지척이니 머뭇거리지 말라”시는 듯한 정갈한 선생님의 모습과 시조들이 스쳐 간다.

망향사(望鄕詞)

 고향에 살다가
 시들해서 버린 고향이

 고향을 떠나 와선 
 이렇게도 그리워서

 구름 길
 따라가다가
 놀에 젖은 눈시울.

 내 죽으면 잊혀 질까
 죽지 않곤 못 떨칠 하늘

 철 따라 흔들리는
 세월 바랜 하얀 억새

 어머님
 먼 손짓 되어
 날 부르는 김산읍내(金山邑內)

 “고향이 그리울 때 읽어보고 향수를 달래길 바란다”라고 하시며 보내 주신 은사님의 시집“사향춘(思鄕春)”에 수록된 글이다. 샘터 문학신문은 시조 시인 장정문“낙동강처럼 청초하고 두메골처럼 청렴하게 살다 가시다”라고 하였다. 들풀 같은 사람에게 글을 쓰게 해 주신 분, 청렴한 선비로 사시다가 지난 11월 10일 본향으로 가셨다. 꿈에도 그리워하던 황악산黃岳山 물빛 학鶴처럼 훨훨 날아 가셨겠지… 선생님의 시조를 덧붙이며 글을 맺는다.

“사향춘”

 어제 온 사람 있어 고향 소식 물었더니
 사립문 열려진 채 마을은 비었는데
 우리집
 해묵은 살구나무 꽃이 지고 있더라네.

 돌아 간들 누가 알까? 반겨 줄이 하나없이
 봉황루(鳳凰樓)올라서서 추풍령 바라보면
 웬 아이
 찾아와 묻겠지 그 어디서 왔느냐고?

 나 또한 너희 들로 여기서 철이 들어
 구름처럼 떠돌다가 이제야 돌아오니
 반갑다
 할 내 친구는 산에 가고 없다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