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시냇가)인생의 터전이 무너져 내릴 때(시11:1-7)
2019/10/24 20:47 입력  |  조회수 : 3,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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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목사(한마음사랑의교회 원로)
 
오늘의 우리는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혼돈과 무질서, 가치관의 혼란 속에 살고 있습니다. 사회는 지금 돌이킬 수 없는 다원화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다원화 사회가 종교, 사회적 다원주의로 변했습니다. 세상은 철저히 세속화되고 도덕적 기준 상실과 부패하여 수습방안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확신은 세상이 아무리 엄청난 속도로 변한다고 해도 변치 않는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의 잣대로 세상과 우주와 인생을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 인생은 흔들리고 무너져 내릴 때가 있습니다.
 처음에 다윗의 생애는 매우 견고해 보였습니다. 그가 베들레헴의 어린 목동일 때 당시 최고 지도자인 사무엘이 직접 찾아와 그에게 기름을 붓고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그 후 그는 골리앗을 이기고 화려하게 백성들 앞에 등장했습니다. 그는 떠오르는 태양과 같았습니다. 그는 군대 장군으로서 충실하게 직무를 수행했고, 백성들은 환호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사울 왕의 딸 미갈과 결혼하여 왕의 부마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베들레헴의 목동이던 때와 비교하면 상상도 못할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인생의 터는 하루아침에 무너졌습니다. 그가 그렇게 사랑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고 섬겼던 왕이자 장인인 사울이 그를 죽이려고 자객을 보냈습니다. 그는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도망했고, 얼마 후 아내도 다른 남자에게 가 버렸습니다. 그 때부터 그는 하루살이 같은 목숨을 부지하면서 끝도 없는 도망자의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성공한 것처럼 보이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가장 비참한 지경에 떨어졌습니다.
 2. 믿고 여호와께 피하십시오.
 터가 무너질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도대체 뭘 할 수 있을까요? 본문 3절을 보면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이 대목을 새 번역성경으로 보면 “기초가 바닥부터 흔들리는 이 마당에 의인인들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되어 있습니다. 터가 무너지면 비록 그가 의인일지라도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정말 무기력합니다.  단 하나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도망하는 것뿐입니다. 어서 빨리 도망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살 길입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문제가 제기됩니다. 그것은 “어디로 도망할 것인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터가 무너질 때 어디로 피해야 할까요? 본문은 두 군데의 피난처를 제시합니다. 그 하나는 “산”입니다. 1절 후반부에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윗에게 권한 피난처는 산이었습니다. 예로부터 적에게 공격을 받을 때 모든 것을 버리고 산으로 도망하는 것은 일반적인 관행이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이 유황불로 무너질 때,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산으로 도망했습니다. 그렇다면 산으로 도망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처사일까요? 여기 문제가 있습니다. 만약 사람이 새라면, 새처럼 날개가 달렸다면 높은 산으로 날아가서 우거진 숲에 은신하면 안전할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은 새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새처럼 산으로 날 수 없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산으로 피하려 한다면 그는 자신을 새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는 아직도 자신에게 날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미 그의 날개는 꺾인 지 오래입니다. 아직도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얼마나 연약한지 제대로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산으로 가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다윗도 사울 왕에게 쫓길 때 산으로 피신한 적이 많았습니다. 삼상 23장, 24장을 읽어보면 산과 들로 숨어 다니는 다윗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산은 다윗에게 피난처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가 산으로 피하면 사울 왕도 산으로 그를 추격해 왔습니다. 예를 들어 삼상 24장 2절을 보면 “사울이 온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 명을 거느리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찾으러 들 염소 바위로 갈 새”라고 되어 있습니다. 결코 산도 안전한 피난처는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인생의 터가 다 무너진 다윗을 보호해준 피난처는 어디였습니까? 그 피난처는 다름 아닌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사울이 산에까지 추격해 왔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보호하셨습니다. 삼상 23장 14절에 “다윗이 광야의 요새에도 있었고 또 십 광야 산골에도 머물렀으므로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 할렐루야!   사울이 매일 찾아도 하나님은 매일 다윗을 보호하셨습니다. 다윗은 분명히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안전한 곳은 하나님의 품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같은 피난처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는 마음을 정했습니다. 남은 인생 전체를 하나님께 맡기기로 했습니다. 하나님께 숨기로 했습니다. 본문 1절 상반절은 이러한 결단을 보여줍니다.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이미 그는 여호와 하나님께로 피했습니다. 망설이거나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결론
 성도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께로 피하십시오. 터가 무너질 때,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때,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때, 여호와 하나님께 피신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피난처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참 피난처가 될 수 있을까요? 본문은 그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은 계신 곳부터가 다릅니다. 여러분, 터가 무너져 내릴 때 가장 안전한 곳은 어디일까요? 그 곳은 하늘입니다. 지진으로 터가 무너져도, 쓰나미가 와서 모든 것을 쓸어가도 하늘에 떠 있는 사람은 안전합니다. 그러므로 하늘로 피해야 합니다. 그 하늘은 하나님의 처소입니다. 본문 4절에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보좌는 하늘에 있습니다. 여기서 “하늘”은 “터”와 대조되는 개념입니다. 우리는 터 위에 인생과 가정, 성공과 명예의 탑을 쌓습니다. 그런데 그 터는 순식간에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나 터가 무너지는 그 순간에도 하늘은 변함없습니다. 하늘은 여전히 높고 푸릅니다. 땅이 굉음과 함께 갈라지는 지진의 순간에도 하늘은 고요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실존적인 문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에 있는데, 어떻게 날개도 없는 우리가 하늘에까지 날아오르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가장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께로 날아가겠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염려할 것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피하는 자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손을 내밀어  당신에게 피하는 자의 손을 잡아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손은 어디에 나타나 있습니까? 4절을 다시 보면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여기서 우리는 안심하게 됩니다. 만약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늘 보좌에 계시다고만 되어 있다면 우리는 절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란 구절이 먼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왜 하늘 보좌에만 계시지 않고, 이 땅에 있는 성전에도 계십니까? 그 이유는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다윗은 산으로 피하는 대신에, 여호와 하나님께로 피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그를 생명싸개로 싸셔서 숨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피난처가 되시고, 피할 바위가 되시고, 구원의 뿔이 되어 주셨습니다. 이민생활에 지쳐있는 여러분이여! 여러분도 교회에 나아가 하나님의 손을 잡으시기를 바랍니다. 그 길만이 유일하게 살길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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