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묵 목사(신광침례교회 담임)
한국 교육부의 파견 교사로 파라과이의 한국학교에 근무하시는 중에 제가 목회하던 교회를 출석하시던 “L”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이 3년여의 임기를 마치고 한국으로 가시기 며칠 전, 심방 겸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며 이곳에 계시는 동안 교회 생활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제 아내가 물었을 때 그분의 대답이 “이곳에 와서 교회를 다니는 것은 제게 박카스 같은 것이었습니다”였던 것이 종종 기억이 납니다. 우리 한국 사람에게 박카스는 힘, 원기회복 등의 이미지로 통용이 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독신으로 먼 남미에 혼자 파견을 나와 외롭고 힘이 들었던 그분께 교회가 어떤 의지처가 되었다는 의미 정도로 이해를 했습니다.
사실 오랜 이민 생활 속에 교회를 통해 힘과 위로를 얻곤 하는 우리에게도 교회는 종종 그런 박카스로서의 이미지일 때가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박카스의 다른 이미지, 즉 피곤하고 지쳤을 때, 그래서 기운을 차리기 위해 찾는 음료라는 것을 고려하면 교회를 그런 ‘박카스’의 이미지로서만 생각하는 것은 곤란하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아담 이후로 오늘날까지 살았던 모든 인생들 중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을 꼽으라면, 저 개인적으로는 예수님이 이 땅에 계셨을 때에, 곁에 계시는 그 메시아를 두 눈으로 보고, 그 분이 전하고 가르치시는 말씀을 직접 듣고, 그분이 행하시는 일들의 현장에 있었으면서도 그 분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생수가 바로 옆에 계신데도 불구하고 영혼의 갈증을 지닌 채 살았으니 그보다 더 안타깝고 불쌍한 사람들이 또 있을까요?
오늘날 우리도 그럴 수가 있습니다. 오랜 시간 교회를 다녔으면서도 생수이신 예수님을 알지 못한 채, 그 분과 별로 깊이 있는 교제도 하지 않고, 그래서 그 분이 주시는 기쁨과 만족과 평안의 복을 모른 채 살아가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서를 살펴보면 예수님의 제자들도 처음 부르심을 받았을 때엔 처음 몇 달은 일종의 파트타임으로 주님을 따르기를 일 년 가까이 하다가다 결국 생수이신 주님을 온전히 따를 것을 결심하고 전업 제자로 전환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전환의 계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의 사는 모습을 통해서 내가 지나온 신앙의 세월이 드러나는 그런 성도들이 되어서, 박카스가 아닌 생수로서의 주님과 교회를 항상 경험해야 합니다.
이번 생수로서의 주님을 경험하는 그런 은혜의 자리가 될 이번 주일의 예배에 꼭 참석하시기를 권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