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문학 산책)엔토 슈사큐의 “침묵”
2019/07/05 00:38 입력  |  조회수 : 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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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 목사(World Share USA)
 
얼마전 엔토 슈사큐의 실화 소설 “침묵”이 영화로 상영되었다. 마틴 스코세이지(MartinScorsese) 감독이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영화 침묵(사일런스:Silence)은 지난 2016년 11월 로마에서 시사회를 가졌고, 12월에 미국에서 상영되기 시작했다. 한국에는 2017년 2월에 상영되었다. 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했다는 것과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순교적 상황에서 다루었다는 점과 유명한 원작 소설의 영화 작품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은 영화였다.

 홍성사에서 출판한 ‘침묵’이라는 소설은 기독교인들에 의해서 읽혀지고 알려진 작품이었다. 침묵이라는 원작 소설이 갖는 충격적인 줄거리 까닭에 영화가 일반에 공개되기전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일인 시사회가 있었고, 이어서 바티칸 추기경들에 의한 특별 시사회를 거쳤었다. 그 만큼 영화가 다루는 문제가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참혹한 선교의 현장 보고
 침묵의 줄거리를 거칠게 정리하면 이렇다. 당시 예수회 소속 저명한 신학자인 페레이라 크리스트반 신부가 선교지 일본에서 탄압에 굴복하여 배교했다는 소식이 로마 교황청에 전해진다. 페레이라 크리스트반 신부는 일본에서 33년을 체류하며 복음을 전하던 베테랑 선교사였다. 나아가 그는 일반 신부가 아니라 주교(主敎)였다. 신학적 재능이 뛰어났으며, 박해를 받으면서도 잠복해서 선교를 계속해 온 불굴의 신념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페레이라 크리스트반 주교가 배교를 맹세했다는 보고가 들어 온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세 명의 젊은 신부가 분개한다. 이들은 모두 페레이라 크리스트반 주교의 제자들이었다. 자신들의 은사였던 페레이라 신부가 이교도에게 굴종해 배교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진실을 밝히고, 선교지 일본을 새롭게 하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세 젊은 신부는 일본에 건너가 사건 진상을 직접 확인하기로 마음먹는다. 세 사람의 열정을 받아들인 천주교 당국은 1637년 그들에게 일본 선교를 허락한다.

 세 사람의 젊은 신부 중 한 사람은 건강 악화로 일본에 들어가지 못하고 프랜시스 가르페와 세바스티앙 로드리고 두 신부만 일본 땅을 밟는다. 그들은 마카오에서 안내를 맡은 일본인 키치지로의 도움을 받아 일본에 잠입한다. 일본은 더 이상 천주교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천주교를 통해 이미 유럽의 문물과 조총을 입수한 일본은 더 이상 천주교가 필요 없었다.

 하나님의 침묵
 무시무시한 상황에서 로드리고는 자신과 일본의 신자들을 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지만 하나님의 응답이 없다. 그야말로 무서운 “침묵”을 경험한다. 도망치던 로드리고는 안내자 키치지로가 배신하여 밀고함으로 체포된다. 이 과정에서 로드리고는 수많은 신자들의 참혹한 죽음을 목격한다. 그리고 몸이 묶인 채로 바다에 던져져 순교하는 신자들을 보고 무심코 그들에게 달려가서 함께 익사하는 자신의 동료 카르페 신부의 모습까지 본다. 그들의 죽음에서 전혀 영웅적인 모습을 찾아볼 수 없고 그들의 처참한 순교 후에도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하나님의 “침묵”에 갈등한다.

 당대의 일본 천주교 신자들은 예수님의 성화를 밟으며 예수를 부인하는 것을 강요받는다. 예수님 성화를 밟지 않으려고 수많은 신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로드리고 신부는 눈앞에서 죽어가는 신도들을 지켜보며, “네가 배교를 하지 않으면 일본인 교인들이 하나 둘 고문당해 죽어갈 것”이라는 협박과 회유 앞에서 고뇌한다.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일본에 왔지만, 그 복음으로 인해 죽어가는 교인들을 보며 로드리고 신부는 한 없이 아파한다. 이토록 극한적인 상황 속에서 절규하는 신자와 자신의 기도에 침묵하시는 하나님의 침묵에 크게 갈등한다. 성화를 밟아 성도들을 살리는 것이 믿음의 용기인지, 성도들의 죽음을 보고서도 끝내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순교를 선택하는 것이 믿음의 용기인지 고뇌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침묵에 대한 아픔은 깊어 간다.

  침묵을 이기는 믿음의 인내
 성경에도 하나님의 침묵은 있다. 믿음의 영웅들은 하나님의 침묵을 믿음으로 이긴 사람들이다. 요셉은 하나님의 침묵을 믿음의 인내로 이긴다. 보디발의 아내가 던지는 유혹의 눈짓을 피하다가 감옥을 가는 장면에 하나님의 침묵이 있다. 얼마나 억울했을까? 필자는 이 장면을 읽을 때마다 요셉의 피맺힌 기도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요셉은 낙심하지 않는다. 요셉은 하나님의 침묵으로 채워지는 그 고난의 세월을 믿음의 인내로 이긴다. 포기하지 않고 성실한 모범수로 감옥 생활을 이긴다.

 욥의 고난의 현장에도 하나님의 침묵이 있다. 욥의 고난에 하나님의 설명이 없다. 하나님의 설명이 없는 무서운 고난의 현장에서 욥은 하나님을 향한 무한신뢰를 보낸다. 욥은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지만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을 믿었다. 그래서 그는 그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입으로 범죄하지 않았다. 고난을 이기는 신앙의 모범을 보인다. 

 침묵에서 듣는 하나님 음성
 얼마전 필자는 지역 목회자 모임에 참석했었다. 자연스럽게 목회의 아픔이 나눠졌다. 어렵게 양육한 성도를 좀더 여건이 좋은 이웃 교회에 빼앗긴 목회자의 아픔을 들었다. 초신자를 양육하고 세워서 쓸만한 일군이 되었는데 이웃교회에 빼앗기는 아픔을 나누는 대목에서 목사님과 사모님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아팠다. 모든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야속한(?) 하나님의 침묵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시편(13편)에서도 시인은 하나님의 침묵에 절규한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침묵에 절규하셨다. 모든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침묵을 경험한다. 선교와 목회의 현장에서, 사역과 섬김의 자리에서, 질펀한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침묵은 있다.

 ‘침묵’의 한 대목을 소개하며 이 글을 맺는다. 로드리고 신부가 ‘주여 당신은 이 참혹한 죽음을 보시며 여전히 침묵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다. ‘나는 침묵하고 있었던 게 아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아파하고 있었다.’ 주님이 나와 함께 아파하며 고난당하고 계시다는 사실에 큰 위로를 받는다. 침묵 속에서 우레와 같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진정한 믿음일 것이다. 구름 낀 깜깜한 밤 하늘에도 빛나는 별들이 있듯이 무거운 하나님의 침묵에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외침이 있음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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