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사회 읽기:한인의 미래)한인 이민배경의 다양성
2019/06/06 22:20 입력  |  조회수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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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중 선교사(한국외대 국제지역학 박사수료)
 
브라질 한인 사회는 1963년 공식이민 후 이민역사 반세기를 지나며 1세대와 1.5세대, 2세대와 3세대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해방 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폐허가 된 한국사회에서 박정희 군부는 남미, 특히 산업 붐이 시작되던 브라질로 이민을 추진합니다. 당시 브라질에 도착한 이민단의 구성은 명목상으로는 농업이민이었지만, 그 구성원은 퇴역장교, 교육을 받은 중산층, 기독교인들, 기자, 소상공인들과 같이 다양했습니다. 이역만리 배를 타고 브라질에 도착한 한인들은 도시 외곽의 농장에 격리되었고, 교육시설의 부족, 위생환경의 열악함으로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양국 정부의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이민브로커들 사이의 갈등으로 브라질과 한국사이의 이민협정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지요. 초기 농업이민 실패를 목격한 후 한인 이민은 1971년 1,400명의 ‘기술이민단’으로 재개됩니다. 당시 이민자들의 배경은 대학졸업자도 있었고 남대문과 동대문에서 의류업을 하던 중산층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한국과 브라질 정부가 추진했던 이민자들에 대한 기대는 양국의 이민정책을 충실히 이행하며 통제가 가능한 노동력에 초점이 맞춰 있었습니다. 이는 브라질에 도착한 한인들의 집단생활을 위해 땅과 숙소도 준비되었던 것에서 발견됩니다. 하지만 당시 한인들의 다양한 배경과 기질은 브라질 이민정책과는 거리가 있었지요. 머리가 좋고 사업수완이 있던 한인들은 한국의 척박한 환경과 매우 다른 자신들이 딛고 있는 브라질의 가능성을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브라질 한인사회에 불법과 경유이민으로 다양한 이민자들의 유입이 시작되었습니다. 1968년 브라질 정부가 농업이민의 실패를 경험으로 한국이민자들을 더 이상 수용을 금지하자, 한인들은 1974년부터 이민브로커와 가족 네트워크를 동원해 파라과이, 볼리비아를 경유하여 브라질로 들어왔습니다.
 한편, 1977년 계약이 만료된 독일의 파독광부와 간호사 중 일부가 귀국하지 않고 브라질로 오기도 했습니다. 1980년대 이후 한국정부의 가족초청이주, 연쇄이주, 개별이주는 브라질 한인 사회를 인구학적으로 다양화 시킵니다. 이 시기 브라질 한인들은 초창기 이민사업과 마찬가지로 세대주를 중심으로 한국에 있는 가족을 초청하기 시작했는데, 브라질의 가족 범위가 한국보다 느슨했기 때문에 먼 친척과 같은 이들도 브라질에 ‘가족’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
 한인들의 의류제품업은 한인사회를 사회-경제적으로 다양화 시킵니다. 원단을 수입하고, 옷을 만들고 파는 일에 믿고 의지하고 함께 일 하며 좋은 제품으로 경제적 성공을 이룹니다. 한인들의 의류제품업은 19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Guimares(2009) 따르면, 제품업은 한인사회가 호황이던 때 2,500개의 중소규모의 가게에서 70,000명을 고용했고 100개가 넘는 무역과 관련된 회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한인들에게 소위 ‘대박’을 한 번 치게 되면 남미 전역에서 물건을 사러 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소위 ‘엄청 돈 번 교포’와 ‘그렇지 못한 교포’라는 말이 나오게 된 시점이기도 합니다. 번 돈으로 건물과 같은 부동산을 산 경우 불황의 시기에도 견딜 수 있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지금도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주위를 보면, 한인 사회 내 경제력의 차이에 따른 위계성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브라질 한인의 정착과 사회화 과정에는 다양한 이민배경이 있습니다. 이민 초창기 농업이민과 기술이민은 브라질의 노동력 공급과 통제라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민자들의 배경이 상이했기 때문에 이민협정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도시로 진출한 한인들은 동포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의지한 측면도 있었지만 다양한 이민 배경은 비록 같은 의류제품업을 하는 한인 사회 내에서 갈등과 반목의 씨앗이 되기도 했습니다.
 브라질 사회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이민경험을 축적한 것은 이민자 개인에게도, 한인사회의 ‘자산’입니다. 경험이 다양하면 위기 상황에서 잘 대처 할 수 있다고 하지요. 따라서, 한인경제생산 방식의 ‘다양화’, 브라질 사회와 ‘잘 어울려’살려는 노력, 그리고 한국과의 ‘지속적인 관계’유지는 한인들과 한인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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