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현 목사(헤브론교회 담임)
[사도행전 14:1-7]
사도 바울과 바나바는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해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러자 유대교 공동체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한 유대인들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하고 갈라디아 지방에서 쫓아냅니다. 쫓겨난 바울과 바나바가 간곳이 어디입니까? 길리기아의 이고니온이란 곳입니다. 이고니온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약 230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오늘날 터키의 콘야라는 곳인데, 터키에서 4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이고니온은 ‘형상이 닮은’이란 뜻입니다. 컴퓨터 용어인 ‘아이콘’은 이 도시의 이름에서 나왔습니다. 이고니온의 동굴이나 교회 천장이나 벽에는 십자가, 교회와 신앙에 대한 아이콘으로 가득합니다.
두 사도가 비시디아 안디옥을 떠나 이고니온으로 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핍박과 쫓겨남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고니온에 와서 이들이 한 일은 무엇입니까?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어려움을 당했으니, 이곳에서 위로를 받고, 격려를 받고, 휴식을 취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고니온에서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유대 사람의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그 결과 허다한 유대와 헬라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복음을 거부한 유대인들의 방해는 계속됩니다. 2절을 보시면 바울이 가슴에 품고 사랑한 동족 유대인들이 복음을 방해합니다. 첫째로 순종치 않았습니다. 둘째로, 선동했습니다. 셋째로, 악감을 품게 했습니다. 이고니온에서는 좀 평안할까 했지만 복음의 환경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바울과 바나바는 담대히 복음을 전합니다.
3절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 핍박이 시작되었음에도 그들은 오랫동안 거기 머물면서 오직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담대히 복음을 전했고 그 때 복음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주님을 전적으로 믿고 주님 앞에 맡길 때에 주께서 힘과 능력과 지혜를 주십니다. 주를 힘입으니까 인내심이 생겼고, 주를 힘입으니까 핍박 속에서도 담대히 복음을 전하고, 주를 힘입으니까 주께서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셔서 복음의 역사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3절 하반 절을 보시면 “자기 은혜”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 말씀을 헬라어 원어로 보면 “내게 주신 은혜”라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2장 3절, 15장 15절, 갈라디아서 2장 9절, 에베소서 3장 7절 등 여러 곳에서 같은 말을 사용합니다. “내게 주신 은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각자에게 주신 ‘특별한 은혜’가 있습니다. 바로 내게 주신 “그 은혜”가 있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핍박 속에서도 전도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게 주신 은혜, 그 특별한 은혜는 나를 위해 쓸 것이 아니라 바울처럼 그 은혜를 주신 예수님의 복음을 위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 은혜 때문에 고난과 박해 속에 살았지만 ‘그 은혜가 내게 족하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복음의 아이콘’으로 살아갑니다.
5절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그들은 그들의 가진 권력으로 사도들을 핍박하고, 복음을 훼방합니다. 우리가 힘을 쓰는 방법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헌신’이고, 다른 하나는 ‘남용’입니다.
유대인들은 주신 힘을 남용했고, 바울과 바나바는 그 힘으로 헌신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힘을 남용하는 곳에는 절망과 어두움뿐입니다. 하지만 주신 힘을 가지고 복음을 위해 헌신하면, 기사와 표적이 나타납니다. 바라기는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능력을 의지함으로, 사자의 심장을 가진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