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중 선교사(한국외대 국제지역학 박사수료)
4년 전 이 맘 때 쯤인 것 같습니다. 월드컵 준결승전 브라질X독일. 필자는 아마존 마나우스에서 상파울로 가는 텅 빈 Azul 비행기 안에 있었습니다. 이륙 후 얼마 되지 않아 경기시간이 되었습니다. 기장의 안내방송이 나옵니다. “브라질의 승리를 간절히 바라며 앞에 계신 모니터를 봐주세요” 스무 여명의 승객들은 환호성을 지릅니다. 기내에서 생중계로 축구를 보다니요. 같은 시간 남부의 대표도시 포르투 알레그리(Porto Alegre). 평소에 자국을 열광적으로 응원하던 브라질 축구 팬들이 집에 있던 독일 국기를 들고 식당, 거리, 광장, 공원으로 모입니다. 남부지역에는 많은 독일 이민자들과 그 후손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지요. 남부는 독일 이외에도 이탈리아, 폴란드, 우크라니아와 같은 유럽인들이 정착한 곳입니다. 브라질에 살지만 유럽의 피가 흐르는 이들에게 누구를 응원해야 하나 참 갈등이었을 겁니다. 빠라나(Paraná), 산따 까타리나(Santa Catarina)와 히오 그란지 두 술(Rio Grande do Sul)의 세 개의 주로 이루어진 남부 (Região Sul do Brasil)는 “브라질의 다른 얼굴”이라 불릴 만 합니다. 수많은 유럽식의 건축물, 음식문화, 말투, 생활방식은 브라질의 다른 지역과 구분됩니다. 남부는 총 면적의 7% 밖에 안되지만 브라질 인구의 2600만 명이 살고 있으며 관광, 경제,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인간개발지수, 교육, 의료, 주거수준이 높고, 사회 범죄율이 낮은 지역입니다.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파라과이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역사적으로 수많은 외교갈등과 전쟁을 겪은 곳이기도 합니다. 음식문화도 다양하고 풍부합니다. 브라질 최고 품질의 소고기 바베큐(Churrasco Gaúcho), 이탈리아식 살라미(Salami Italiano), 식민지 스타일 치즈(Queijo Colonial), 그리고 마테차인 쉬마허웅(Chimarrão)은 이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입니다.
브라질 남동부가 커피가 상징이라면 남부는 말을 타고 추운 기후에 산과 강을 건너며 한번도 가보지 않은 곳을 개척하는 가우쇼(Gaúcho)가 있습니다. 이 지역 태생을 가리키기도 하는 이 용어는 18-19세기 아르헨티나와 히오 그란지 두 술의 많은 지역에 퍼졌습니다. 지식, 예술, 도구, 음식, 전통, 음악에도 잘 묻어나 있으며 용감하고 관대한 정신 문화를 표현하기도 합니다. 역사적으로 이 지역에 정착한 유럽인들은 말과 가축을 넓은 초원인 팜파스로 가져왔고 독립심, 이동성, 적극성, 자부심으로 브라질의 다른 지역과 구분되는 가우쇼 문화를 만들었지요. 지금은 많이 수그러들긴 했지만 남부가 브라질로부터 독립하려는 요구와 시도는 이곳 유럽인들과 그 후손들의 인종-정체성 우월의식에 근거합니다. 상파울로 연구소(FAPESP)의 루비조토 연구원은 “히오 그란지 두 술의 가우쇼 문화와 분파주의”『Cultura Gaúcha e Separatismo no Rio Grande do Sul』 (2009) 에서 남부는 다른 지역에 비해 브라질 사회 정체성 형성 과정에서 일정 거리를 유지하여 독립적으로 발전했고 이는 사회 통합의 부정적인 면이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한인들에게 브라질 남부지역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관련성이 많습니다. 한국에서 온 많은 유학생들이 있고 기업들도 진출하고 있습니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 때문이겠지요. 필자가 경험한 바로는 한국과 비슷한 사계절 기후 뿐 아니라 의식수준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외국인에게 관대한 태도, 더 좋은 것을 받아들이고 배우고자 하는 자세와 열정, 정보와 기술을 대하는 태도와 속도, 부가가치 있는 재화를 창출하려는 분위기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남부지역은 관료주의와 브라질 식 일 처리 방식(Jeithinho Brasileiro)에 익숙해진 한인들에게 보다 낳은 미래를 위해 고려해 볼 만한 환경입니다. 개척자들의 희생과 용기로 수많은 환경적 어려움을 뚫고 정착한 개척자 가우쇼들이 한인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