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갈 때는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잘 나갈 때는 이곳저곳에서 불러 주었다. 그런데 안 되니까 부르는 사람도 없다. 목사님들의 모임이 있었다. 한 20여명 모여서 예배도 드리고 사진도 찍고 친교도 나누고 식사도 같이 했다. 중요한 모임이라 오래 기념하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를 가져가지 못했기 때문에 사진 찍은 사람에게 나의 이메일 주소를 주면서 꼭 E 메일로 보내 달라고 두 번 세 번 부탁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다. 잘 나갈 때는 부탁하지 않아도 먼저 볼펜과 메모지를 가지고 와서 사진을 보내드릴 터이니 주소나 이메일을 달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볼펜 있느냐고 물어 가면서 겨우 볼펜과 메모지를 구해서(그날따라 내게 볼펜과 메모지가 없었다) 나의 이메일 주소를 어렵게 주었는데도 연락이 없다. 하나의 예에 불과하지만 너무나 많은 이런 종류의 경험들을 하면서 별 볼일 없는 사람이 되었구나 생각하니 참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초라해진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까지 달라 질 수 있을까 생각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찾아와 부탁하는 일이 많았다. 성공하고 잘 나갈 때는 젊은 사람들이 차렷 자세로 나의 말을 듣고 받아 적고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존경하는 눈빛으로 대해 주었다. 때로는 아부하는 말을 하면서 나를 높여 주었다. “네, 목사님, 네, 목사님” 그랬다.
 교회도 부흥하고 돈도 쓰고 성공적으로 목회 할 때는 글을 써 달라는 부탁도 했고 이곳저곳에서 도와달라고 전화도 오고 편지도 오고 크리스마스 카드도 왔다. 가만히 있어도 총회장도 시켜주고 총무도 시켜주고 회장도 시켜주고 임원도 시켜 주었다. 선거 운동하지 않아도 옆에서 다 해 주었다. ‘이름만 빌려 주십시오 나머지는 우리가 다 하겠습니다’ 그랬다. 그런데 교회 개척하고 몇 명모이지 않고 돈도 없고 힘이 약하니까 설교 부탁하는 사람도 없고 세미나 강사로 부탁하는 사람도 없고 크고 작은 행사에 순서도 물론 없다. 크리스마스가 되어도, 연말이 되어도 카드 한 장 없다. 갑자기 달라진 삶의 모습에서 고민하고 갈등했다. 그런데 이런 경험들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너 자신을 내려 놓으라”는 깨달음이었다. 노인이 되면 7-Up 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Clean Up, Shut Up, Dress Up, Show Up, Listen Up, Open Up, Give Up 이 그것이다. 이 7- Up은 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 동안 내색을 하지 않으면서 혼자 끙끙 앓아 왔던 것은 바로 그 Give Up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로 목사가 되면서 교회들 가운데 문제가 되는 것은 자신을 내려놓는 Give Up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목회를 하면서 교회가 시끄러운 것은 피차간에 그 내려놓음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예수님처럼 자신을 내려놓았다면 뭐가 문제가 될까.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로” 오신 주님을 닮는다면 세상 법정으로 가지 않고도 잘 해결할 수 있지 않았을까. 영어로 Humility(겸손, 스스로 낮춤) 라는 말은 비옥한 땅을 의미하는 humus에서 왔다고 했다. 그래서 Anthony Bloom은 “땅이 사람들이 항상 밟고 다니며 온갖 쓰레기를 다 받아들이고 비옥한 땅을 만드는 것처럼 땅의 진리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겸손”이라고 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세상의 모든 쓰레기들을 다 받아들이고 또 사람들에게 밟히고 밟히면서 사람을 비옥하게 만드셨다.
 자신을 내려놓으니 마음이 편해 졌다. 내려놓음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상황이 내려놓게 만들었으니 나는 그것을 감사한다. 아직도 잘 나가는 사람들의 그룹에 있었다면 내려놓음의 평안을 얻었을까. 아마 점점 더 교만해 졌을 것이다. 다른 영역에서의 다른 기쁨을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내려놓으니 다른 것을 주셨다. 자녀들을 통하여, 형제 가족들을 통하여, 그리고 교인들을 통하여 새로운 기쁨을 주셨다. “옛날이 좋았어. 그때가 황금 시대였지” 하지 말자. “지금이 좋아. 내일은 더 좋아질 거야“하자. ”그때 그러지 말걸, 왜 내가 그랬지?“ 하지 말자. ”그때 그렇게 한 것이 참 잘한 일이였어“ 하자.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최선을 선택하게 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려놓을 때 비로소 비옥해지고 편안해 진다. ”더 내려 놓으세오“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