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환 목사(크리스천위클리 발행인)

소치 동계 올림픽, 이제 잔치는 끝났다. 대충 보고 넘겼지만 미국 사는 우리 한인들도 김연아를 입에 달고 있기에 김연아 피겨스케이팅은 눈여겨 보았다. 뱅쿠버에 이어 이번에도 금메달을 따서 올림픽 피겨 역사상 3번째 2연패의 주인공이 되느냐 마느냐가 모두의 관심사였다. 그러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은메달이었다. 김연아는 세계에 살고 있는 모든 한인들에게, 그리고 피겨 스케이팅을 사랑하는 모든 팬들에게 행복을 안겨주고 이제 무대를 떠났다. 올림픽을 통한 그의 피겨 스케이팅 실력이 얼마나 출중했으면 월스트릿 저널은 그의 은퇴를 놓고 헌시까지 바쳤을까? 아마도 대한민국이란 국가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리는데 김연아란 이름 석자가 엄청 크게 작용했을 것도 같다. 김연아에게 짠 점수를 주었다고 심판의 편파 판정에 시비를 걸어 인터넷 서명운동을 벌이긴 했지만 막상 당사자는 점수에 불평하지 않고 의연한 모습이었다. 최선을 다했고 보여줄 것을 다 보여줬으니 여한이 없다고 오히려 평온한 마음을 보인 것이다. 그는 분명 ‘피겨 퀸’이었다.
 김연아와 함께 내 마음을 움직인 건 그의 10년 라이벌 일본의 아사다 마오였다. 쇼트 프로그램에서 엉덩방아를 찧는 바람에 김연아와 점수 차이가 크게 벌어졌던 마오는 둘째날 프리스타일경기에서는 첫날의 실수를 만회하려는 듯 얼굴은 초긴장이었다. 마침내 그를 시달리게 했던 트리플 악셀까지 속시원히 성공시키고 엉덩방아도 없이 말끔하게 경기를 끝냈다. 성공이었다. 이때 어린 소녀의 눈에서는 솔방울 같은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빙판위에서 처절하게 싸워온 저 예쁜 소녀들의 금메달 사냥 놀이, 그 지긋지긋한 금메달 쟁탈전에서 비로소 벗어나게 됐다는, 결코 아쉬움과 미련의 눈물이 아닌 오히려 해방의 눈물로 보였다. 마오의 눈물을 보면서 나의 눈시울도 뜨거워졌다. 스케이트를 타는 소녀들의 국가간 금메달 쟁탈전을 벌여놓고 한가하게 박수치며 구경하고 있는 관객들은 누구인가? 메달 숫자로 국가의 순위를 결정짓는 올림픽의 지나친 순위지상주의 때문에 올림픽의 숭고한 정신은 실종되고 오직 이기고 보자는 염치없는 승리주의만 나부끼는 것 같지 않은가? 스포츠를 통한 지구촌의 우애와 평화는 커녕 오히려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만 부추기는 비열한 체육대회로 변질되고 있지 않는가?
 올림픽 메달리스트에게 엄청난 포상금을 주고 훈장을 주는 나라도 있다. 이번 러시아가 그랬다고 한다. 실력 있는 남의 나라 선수들을 귀화란 수단으로 불러들이기도 한다. 올림픽 금메달 하나만 따면 신분이 수직상승되어 출세의 수단이 되고, 광고 모델로 벼락부자가 되는 스타들도 생긴다. 결국은 상업주의에 이용되는 곡마단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더구나 지구촌의 축제라고 떠벌여 놓고 TV중계권을 오직 한 개의 방송국에게만 허용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도둑놈 심보란 말인가? 이러고도 스포츠 정신 운운할 수 있을까? 글로벌 광고주를 의식한 철저한 상업주의에 농락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한걸음 더 나가 보자. 이번 소치 올림픽을 위해 러시아가 쏟아 부은 돈이 500억 달러라고 한다. 열흘 남짓한 운동경기를 벌이기 위해 이 천문학적 숫자의 돈을 들였다면 이건 인류역사 앞에 죄를 짓는 행위라고 할 수도 있다. 굶주리다 못해 하염없이 죽어가는 어린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지구촌의 빈곤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급격한 기후변화의 결과는 이제 재앙 수준으로 다가오고 있다. 미 동북부 지역의 금년 겨울 체감온도는 영하 70도까지 내려가는 남극 한파였다. 그렇다면 500억 달러는 운동경기에 쓸게 아니라 인류가 직면한 더 절박한 위기를 극복하고 예방하는데 쓰여 져야 마땅할 것 같다.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나는 1981년 영국에서 제작된 영화 ‘불의 전차(Chariots of Fire)의 주인공 에릭 리델을 떠올리곤 한다. 1924년 파리 올림픽 경기가 열렸을 때 영국의 달리기 선수로 출전했던 그는 100미터 경주가 열리는 날이 마침 주일이라서 자신의 신앙적 양심에 따라 주일을 범할 수 없다고 결단한다. 결국 출전을 포기한 것이다. 이때 영국 올림픽 위원회와 왕실의 압력이 있었지만 그는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우연히 400미터 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자 100미터 보다는 자신이 없었지만 최선을 다함으로 결국 100미터 선수가 400미터 달리기에서 금메달을 따는데 성공했다. 에릭 리델은 아버지가 일했던 일제치하의 중국 선교사로 가서 생애를 마치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였다. 자신의 신앙적 신념에서 벗어날 경우 올림픽 금메달이 아니라 그 어떤 영광이라도 포기할 수 있다는 그의 빛나는 선택이 주제음악과 더불어 지금도 영화의 고전으로 자리 잡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올림픽 정신에서 탈선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면 과감하게 보이콧 카드를 꺼내들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한 때가 되었다. 금메달이라면, 그래서 자기네 나라 메달순위에 기여할 수 만 있다면 신앙이고 뭐고 다 팽개치는 행위는 타락이다. 더구나 돈과 명예, 출세의 수단으로 둔갑하는 올림픽을 바로잡는 일을 위해서 어쩌면 올림픽 세계 그랜드 쥬리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우리 크리스천만이라도 정신 바짝 차려 불순하게 굴러가는 올림픽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에 일조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