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설교)아기 예수께 경배하라(마2:1-12)
2013/12/20 02:42 입력  |  조회수 : 1,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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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목사(사랑의교회 담임)

 성탄절은 더 이상 설명할 것도 없이 구주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기쁜 날로 성탄절처럼 거의 전 세계가 함께 즐거운 축제로 보내는 날도 없을 것입니다. 마치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전 세계가 캐롤과 카드와 크리스마스 트리에 묻혀서 축제의 꿈과 희망으로 함께 부풀어 오르는듯 합니다. 물론 크리스마스는 실로 온 인류가 아무리 기뻐하고 즐거워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반가운 날로서 이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 자체는 나쁜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성탄절이 왜 그토록 기쁜 날인지 그 날의 본질을 올바로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것과, 과연 그 날을 올바른 방법으로 감사하고 즐거워하고 있는가 하는 것 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현실을 돌아볼 때에 성탄절의 참 본질을 모르는 일부 계층에 의하여 이 날이 여흥과 환락 그리고 상술만이 판치는 날이 된 점도 없지 않는 바, 이렇게 된 이면에는 구주(救主) 예수의 구속사역의 의미를 왜곡 호도하려는 사단(the Satan)의 궤계가 있는 것입니다. 성탄절을 제일 먼저 반기며 알리는 쪽은 쇼핑센타입니다. 백화점에 크리스마스트리가 설치되면 그 때를 시작으로 세상 사람들은 성탄절이 다가온 줄 알며, 거리는 온통 크리스마스 캐롤과 함께 성탄절 분위기에 휩싸입니다. 우리는 성탄절의 본질을 바로 깨닫고 참으로 진리 위에 서서 이날을 올바르고도 즐거운 날로 맞아야 하겠습니다. 본문에서 동방의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이 계신 곳에 찾아왔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무엇 때문에 그들은 그 많은 고통과 위험을 극복하면서 예루살렘과 베들레헴까지 찾아 왔겠습니까?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그렇습니다. 그들이 동방에서부터 예루살렘까지 찾아온 가장 중요한 목적은 메시야를 경배하기 위해서였음이 분명합니다.
 별을 바라보는 자들
 2절의 말씀에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라고 기록합니다. 이들은 오기 전에 동방에서 별을 보았습니다. 그 별은 메시야의 탄생을 알리는 하나님의 계시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인간의 응답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먼저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알리셨기 때문에, 그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경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정작 놀라운 것은 예루살렘은 조용하였습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이 목전에 있음에도 침묵하고 조용하고 여느 날처럼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먼 동방에서는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개의치 않고 예수님을 만나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 달려가고 있는 이들은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는 자들로 시간과 공간에 구애를 받지 않았습니다. 영혼의 구원을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던 동방박사들에게 메시야의 탄생은 그저 기쁨뿐 이었습니다. 이들은 천문학자들이었습니다. 농부들에게는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장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상인들의 예를 들어 위대한 비밀을 풀어 주시던 하나님께서 천문학자들이 그들에게는 하늘의 별로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자신을 나타내시지만 지금도 별을 사용하시고 태양을 사용하시고 자연을 사용하시고 역사를 사용하셔서 모든 인간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동방 박사들에게 나타난 별은 그들에게 메시야를 알리기 위해서, 그들의 걸음을 메시야에게로 인도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로 메시야께 경배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경배할 수 있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박사들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동시대에 똑 같은 별을 바라보았지만 유독히 그들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계시의 방편으로 보여주신 별을 보고서 자기네들의 고향을 떠나 메시야를 찾아가는 위대하고 머나먼 여행을 시작한 것입니다.
 끈질기게 찾아다니는 자들
 본문 1절에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징을 보면서도 그 실체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예를 들어 십자가를 뺏지나 목걸이를 해서 달고 다니면서도 그 안에 그리스도가 없는 영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성만찬에 참여하면서도 나를 위해 피흘려 주시고 나를 위해 그 몸을 버리신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세례를 받으면서도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연합하여 그분 안에서 새로운 사람이 되지 못한 사람들 또한 많습니다. 그러나 동방박사들은 별의 메시지를 알았습니다. 별의 증언을 이해했습니다. 그 별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나타났다는 사실은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동방박사들은 그 별이 증언했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을 경배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들이 고향을 떠나 예루살렘에까지 찾아온 사실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메시야를 만나기 위해 숫한 희생과 고난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산을 건넜을 것이고, 유브라데와 티그리스 강을 건넜을 것입니다. 또 사막을 지났을 것이고 싸늘한 바람을 경험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집에 두고 온 가족들에 대한 염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메시야를 만나는 일,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을 만나기 위해서 동방 박사들은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의 준비를 갖추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에 계십니까?”라고 한 사람 또 한 사람에게 찾아다니며 물었습니다. 아마 동방 박사들은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만왕의 왕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 왔는데도 예루살렘의 도시는 정적에 싸여 있고, 사람들은 아무도 그 소식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방 박사들은 실망하고 회의적인 생각으로 다시 동방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보고 판단하여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는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판단과 행동에 개의치 않고, 세상이 그분을 어떻게 이해하든 간에 박사들은 하나님의 계시 앞에 진실히 대답할 이유는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복음을 들려주시고 그리스도를 알게 해 주셨다면 이제 여러분의 전 인격으로 그것에 응답해야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관심이 없으면 여러분들도 포기하시렵니까? 오늘의 이 역사가 그리스도를 거절하기 때문에 여러분도 그리스도를 거절하시렵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세상의 반응이 주변의 냉대가 심하다 할지라도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분은 바로 나를 위해 오셨고, 나를 구원하려 오셨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그분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영광스러운 복을 우리는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신의 전 인격을 동원해 응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게시뇨?”라고 묻는 물음을 계속하고 다녔습니다. 묻는 자에게는 반드시 대답이 주어지는 법입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멸망을 향해 가면서도 이 위대한 복음의 진리를 구하고 있는가? 모르면 누군가에게 붙들고 물어 보아야 합니다.
 모든 것으로 경배하는 자들
 본문 11절에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함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라고 기록합니다. 아기가 마리아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리아를 경배한 것이 아니라 아기에게 경배하였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가 발견해야 할 지혜는 경배의 대상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마리아도, 크리스마스 트리도 우리의 섬김의 대상이 결코 아닙니다. 그리고 11절을 보면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함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보배함을 열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이 예물들에 영적인 의미를 덧붙일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황금은 보석 중에서 가장 귀한 것입니다. 유향과 몰약은 그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얻을 수 있는 향유 가운데서 가장 귀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린 것, 그것은 그들이 가장 존귀하게 여기는 것을 하나님께 드렸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여행을 하는 도중에 여비가 부족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예물을 팔기만 하면 얼마든지 넉넉하게 여행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소중한 예물을 절대로 자신을 위해서 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가장 존귀한 것을 메시야께만 드리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합니까? 성령의 인도하심이 감사합니까? 예수님 안에서 얻은 영생에 감사합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무엇으로 주님께 드리기 원합니까? 가장 귀한 것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쓰다가 남은 것으로 드리지 마십시오. 황금이 없으면 여러분의 몸을 드리십시오. 유향이 없으시면 여러분의 사랑을 드리십시오. 몰약이 없으시면 여러분의 생명과 인생을 그 앞에 드리십시오. 그리고 그분 앞에 꿇어 엎드려 경배하고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나를 위해 죽으신 나의 생명의 주여, 나를 위해 다신 사신 부활의 영광스러운 메시야여, 내가 내 인생을 당신 앞에 바치기 원합니다. 나를 받으시고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어 주시옵소서.”
 별은 사라졌습니다. 박사들을 인도하던 별은 더 이상 우리에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별이 증언한 예수님은 아직도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메시야를 만나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갈 시간입니다. 이미 메시야를 만난 사람들은 그분께 경배하기 위해서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하나의 별이 되기 위해서 위대한 발걸음을 옮겨야 할 시간입니다. 그것이 바로 금년에도 찾아온 성탄이 우리에게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어느 해인가 우리는 인생의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지나게 될 것입니다.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그리스도에 관한 메시지를 들었으면서도 진정으로 그분을 만나지 못한 채 주님 앞에 서야 한다면 그리고 주님을 영접했으면서도 참으로 그분을 경배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부끄러움과 후회 속에서 그분을 만나야 한다면 그때 여러분은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했다고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금번 성탄절은 우리의 신앙을 새롭게 하고 하나님 앞에 경건한 헌신을 드릴 수 있는 위대한 결단의 기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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