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운철 교수(월드미션대학교)

(지난호에 이어서)
 어두운 밤, 도서관을 나설 때면 캘리포니아 특유의 차가운 밤공기가 코를 통해 온몸에 전해졌다. 몸은 피곤하지만  ‘오늘도 열심히 살았다’는 생각에 뿌듯해 하곤 했다.
 1998년 가을학기부터 시작한 유학생활은 어느 새 일년이 되었다. 중간고사와 중요한 paper 제출일 그리고 기말고사를 준비하노라면 몸과 마음이 지쳤다. 가끔 도서관 3층 긴 의자에 앉아 통유리창 너머로 하늘을 바라보며 브라질을 생각했다. 눈 감으면 보이는 곳은 언제나 Ilha Bela였다. 항구 도시 성 세바스찌엉에서 배로 30분 정도 가면 Ilha Bela가 나온다. 유학 오기 전, 주중에는 회사에서, 주말에는 교회에서 일하다보면 일년에 3, 4일 정도 교회 일도 회사 일도 없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내게 보석과 같은 시간이다. 나는 서둘러 낚시도구를 챙겨 Ilha Bela로 향했다. 해변가 큰 바위에 걸터 앉아 Garopa나 Badejo를 잡았다.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으면 ‘이번에는 어떤 녀석이 잡힐까?’라는 기대감에 설레였고 입질이 시작되면 흥분했다. 아무 생각도 없어지고 온 몸의 신경은 낙싯대에 집중된다. 한바탕 싸움을 벌이고 요동치는 Garopa를 물 밖으로 끌어낼 때면 탄성이 터진다. Borrachudo나 모기가 물어도 모른다. 몰입과 전율 그 자체다. 도서관 3층에 앉아 Ilha bela를 회상하노라면 어느 새 나는 쉼을 얻고 생기를 되찾아 내 앞에 펼쳐진 도전을 맞주할 여유를 얻곤 했다.
 Fulltime으로 공부할 경우 MDiv는 삼년에 끝마칠 수 있는데 유학생은 3 quarters를 공부하면 한 학기를 쉴 수 있다. 그래서 유학생의 경우 졸업까지 3년 6개월이 걸린다. 1998년 가을에 입학해서 나는 2002년 봄학기에 졸업했다. 무척 힘들었지만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기에 크게 후회로 남지는 않는 시간이다. MDiv과정을 공부하면서 나는 영어로 신학을 공부하는 일에 자신감이 생겼고 석사과정에서 풀리지 않는 의문에 대한 연구 갈증이 생겼다. 경제적 형편은 어려웠지만 무대포로 나는 박사과정을 알아보고 있었다. Fuller 신학교 본관 한쪽 벽에 보면 교수들의 사진이 걸려있는데 만체스터 대학 박사학위복을 입은 Donald Hagner와 김세윤 박사의 사진도 있다. 나는 가끔 그 앞에 서서 ‘나도 그 곳에 가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과거 F.F. Bruce가 강의했던 만체스터대학에 가서 연구에 전념하고 싶었다. 나는 다시 토플을 준비했다. 이번에는 따로 준비하지 않았고 익숙하지도 않은 computer-based test였지만 단번에 원하는 점수를 얻었다. 박사과정은 보통 250점 이상의 점수를 요구한다. 3년 6개월 동안 영어 강의를 듣고 영어로 작문을 하다보니 모르는 사이에 영어 실력이 조금씩 늘었던 모양이다.
 2007년 8월, 나는 두 번째 유학을 위해 영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내게는 새로운 도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Ph.D. 과정은 M.Div.와 달랐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렸지만 지난 3년 반 동안의 미국 유학생활은 나에게 자신감과 근성을 길러주었다. ‘그때도 했으니 지금도 해낼 수 있을꺼야.’라며 불안한 마음을 다독일 때 비행기는 영국의 짙은 먹구름 위를 지나고 있었다. 나는 만체스터대학 학교기숙사에 입주해 본격적으로 과정을 시작했다. 영국 박사과정은 입학생을 엄선해 coursework 없이 바로 literature review와 논문쓰기로 들어간다. 지도교수(Dr. Todd Klutz)와 한 달에 한번, 2-3시간씩 만나 토의하고 방향을 잡고 논문을 써나간다. 논문 쓰는 작업은 산 너머 산이었다. Ph.D. 학위는 두 가지 경우에 수여된다. ‘새로운 지식(new knowledge)’을 창출하거나 ‘기존 이론의 신선한 통합 (fresh synthesis of existing theories )’에 성공했을 때다. 나는 현대 언어학적 관점에서 누가복음서에 나오는 최후의 만찬 기사(22:14-23)을 담화분석했다. 이전에 누구도 하지 않은 시도였기 때문에 연구과정에서 만나는 수 많은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쉬운 문제는 하도 없었으며 문제를 만날 때마다 그것은 난제가 되었고 난제의 연속적 등장은 극심한 스트레스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어졌다. 짧게는 몇 일, 길게는 몇 주를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했다. 자료를 요청하기 위해 interlibrary loan을 신청하고, 며칠 후 도착했다는 메일을 받으면 찾아와 읽고 연구하고 고민하다 잠이 든다. 문제 해결은 아침에 눈 뜰 때 주어지곤 했다. ‘아,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유레카의 순간이고 불안과 초조가 희망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마음의 짐도 벗는 시간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문제 해결의 기쁨, ‘학업을 마칠 수 있을까?’라는 불안과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라는 확신,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의 긴장과 문제가 해결될 때의 이완. 이렇게 상반된 감정을 나는 거의 2년 동안 수도 없이 오갔다. 난제를 만나면 우울했고 해결되면 기뻤다. 극과 극의 감정을 숨가쁘게 오가면서 내가 혹시 조울증 환자가 된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영국 유학생활은 길고 힘들었다. 우선 날씨가 힘들었다. 일년 중 6개월이 겨울인데 매일 비가 온다. 겨울 동안은 맑은 날이 거의 없다. 아침에도 비가 오고 저녁에도 비가 온다. 오후 4시 부터 어두워지기 시작해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어둡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짙은  먹구름이 낮게 깔려있다. 뿐만 아니라 주변을 돌아보면 500년, 600년 된 건물들이 즐비하다. 산뜻함과 밝음을 전해주는modernity는 찾아볼 수 없고 칙칙한 옛 건물이 을씨년스럽다. 음식도 한 몫을 거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음식이 영국음식이라는 말이 있다.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학교 식당에서는 매번 감자와 생선으로 음식을 만든다. 감자는 쪄서 먹고, 튀겨서 먹고, 치즈나 소스를 얹져 먹는다. 토질이 좋지 않은 영국은 다른 작물은 어렵고 감자 농사가 잘 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감자를 참 많이도 먹는다. 또 영국은 섬나라인지라 생선에 밀가루를 입혀 기름에 튀겨 먹는다. 그래서 한국의 김치나 된장처럼 영국에서 가장 보편적인 음식이 fish and chips이다. Batata frita와 peixe인데 영국 도착 후 첫 한 달동안 이것만 먹다가 나는 극심한 복통에 응급실 신세를 져야 했다.(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