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운철 교수(월드미션대학교)

1983년 8월, 고등학교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나는 가족과 함께 브라질 이민길에 올랐다. 입시지옥을 탈출하는 기쁨도 잠시 이틀 넘게 기내에 머물면서 나는 탈진했다. 언제 끝나나 싶던 여정이 마침내 종지부를 찍고 브라질 상파울로 꽁공냐스 공항에 도착했다. 한국을 떠나본 적이 없는 나의 눈에 비친 상파울로 거리의 풍경과 오가는 사람들의 이국적인 모습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을 만큼 강렬했다. 그리고 코 끝을 통해 전해지는 커피 향! 아, 이곳이 학교에서 배웠던, 커피로 유명한 바로 그 브라질이구나! 앞으로 16년을 살게 될 브라질과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도착하자 마자 고된 이민생활이 시작되었다. 하루 종일 바느질을 하고 저녁에는 Rua da Consolacao에 위치한 Santa Ines 학교 supletivo 과정으로 고등학교를 마쳤다. 주경야독의 생활이 이어지면서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불투명한 전망이 나를 괴롭혔다. 앞으로 어떻게 살게 될지, 무엇을 해야할지 알 수 없었고, 몇 년동안 열심히 일했지만 생활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바로 밑의 여자 동생이 먼저 교회를 나갔다. 수련회를 다녀왔고 수련회에서 사용한 인쇄물 뒤에 오영리(5 Spiritual Laws)가 있었다. 무심코 책을 집어든 나는 오영리를 하나씩 읽어내려 갔다. ‘바로 이거야! 내가 찼던 진리는 바로 이거야!’ 복음에 대한 간단 명료한 설명이 내게는 진리로 다가왔고 나는 확신에 차서 책이 이끄는 대로 하나님께 영접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바로 인근 교회 새벽기도회에 참석했다. 선교교회였다. 당시에는 Rua Ribeiro de Lima에 위치했다. 예배는 감격이었고 예배 후 이영대 장로님이 진행하신 장년성경공부는 꿀처럼 달았다. 내 신앙의 기초가 다져진 시간이었다. 예수님이 날 위해 죽으셨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이제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하는지를 분명하게 가르쳐주었다. 그분을 위해 살아야 하고 그분을 위해 사는 길은 목회자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오래 고민하지 않고 선교교회에서 운영하던 국제성서대학에 입학했다. 신학 학부과정을 일년 조금 넘게 다닌 후 Perdizes에 있는 FTBSP(상파울로 침례교 신학대학)로 전학해 신학학사과정(Th.B)을 마쳤다.
 졸업 후 주중에는 항공사에서, 주말에는 교회 전도사로 일하면서 미국 유학에 필요한 토플을 준비했다. 토플 준비용 교제를 하나 구입해 혼자서 틈틈히 공부했다. 당시 점수체계로 550점이 필요했는데 시험을 볼 때마다 540 전후가 나왔다. 나는 작은 점수차이라고 생각하고 조금만 하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열심히 준비하고 시험을 봤지만 작은 점수 차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혼자 공부하는 데서 오는 한계인가 생각했다. 궁리 끝에 내가 가고 싶은 Fuller Theological Seminary도 방문하고 Los Angeles에 있는 토플학원에 등록해 가르침을 받으면서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해보자고 생각했다. 마침 1998년 월드컵이 프랑스에서 개최되었고 나는 결승전을 치루러 가는 국가대표의 심정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미국에 도착한 나는 LA 코리아 타운, 올림픽 대로(Olympic Boulevard )에 위치한 시사영어학원에 등록해 3주 동안  밤낮으로 공부했다. 당시 토플 강사는 UCLA에서 정치학 박사과정을 밟던 한국 유학생이었고 학원에는 LA와 인근 대학에 입학하기위해 2, 30명의 학원생들이 모여 공부했다. 나는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문법을 다시 공부하고 독해를 연습하고 예상문제를 풀며 실전에 대비했다. 결전의 날을 기다리며 하루 하루 공부하던 어느 날 내가 신청한 토플 시험날짜가 공교롭게도 마지막 paper-based test라는 소식을 접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게는 두번의 기회가 없다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만일 이번에 원하는 점수를 얻지 못하면 나는 새로운 시험 방식, 곧 computer-based test에 익숙해지기 위해 또 다시 몇 달의 준비기간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내게는 단 한번의 기회만 있었던 것이다. 기도할 때마다 나는 간절했고 공부할 때 나는 치열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3주는 내 인생에서 단기간 가장 열심히 공부한 시간이었다.
 마침내 test일이 다가왔다. Fuller 신학교 근처 토플 test center에서 시험을 받다.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한 문제 한 문제 풀어나갔다. 시험이 다 끝나고 마음이 홀가분했다. 결과는 장담할 수 없지만 모의고사에서 실력이 조금 항상된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결과가 나왔다. 570이란다. 한없이 기뻤다. 그간의 마음 고생이 한 순간에 위로받았고 ‘잘 했다, 훌륭하다!’며 스스로를 칭찬했다. 무엇보다 브라질에서 나를 기다리는 가족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어 천만 다행이었다. 며칠 뒤 Fuller 신학교 입학사무실(admission office)에 가서 준비해간 입학서류를 제출하고 I-20를 발급받았다. 이제 브라질로 돌아가 미영사관에 I-20를 제출하고 학생 비자 (F)를 신청하는 일만 남았다. 숨가쁜 한 달이었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무엇보다 나를 믿고 기다려준 분들을 실망시켜 드리지 않아 기뻤다. 1998년 8월 마침내 나는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에 입국했고 Fuller Theological Seminary에서MDiv 프로그램의 첫 번째 학기에 등록했다. 강의가 시작되자 정신없이 바빠졌다. 미국 학생이 한 시간 공부하면 나는 사전을 찾고 두 번, 세 번 읽으면서 3시간을 공부해야 했다. 비록 토플 성적은 있었지만 처음 몇 학기 동안은 (Fuller는 semester가 아니라 quarter 제다) 강의가 잘 들리지 않았고 영어로 과제물을 해내는 일도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미국 학생들 틈에서 뒤쳐지지 않으려면 나는 두배, 세배의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도서관 문 열 때 들어가서 도서관 문 닫을 때까지 공부했다.(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