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용주 목사(봉헤치로 제일교회 담임)
그 ‘공간’에서 메리가 가장 먼저 대면하게 되는 것은 기괴한 벽화였다. 색깔은 알록달록한데, 일견 알 수 없는 형상들이 잔뜩 그려져 있고, 의미를 파악하기 힘든 글도 적혀 있다. 물론 이 벽화는 - 영화의 내적 서사에서는 - 그동안 이 ‘공간’에서 있었던 일을 요약해 놓은, 일종의 그림 일기다.
이 벽화의 구도를 살펴보면, 우선 벽화의 정중앙에는 클락의 가구점인 ‘클락 선장의 오스만 제국’ 텔레비전 광고 컨셉인 ‘클락 선장’이 왕좌에 앉아 있는 것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키가 대단히 크고 힘이 세다. 노란색으로 칠해진 어떤 사람을 던져 올릴 만큼. 이것은 클락이 되고자 하는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일까? 또 ‘클락 선장’이 위로 던지고 있는 사람은 소리를 지르고 있는 듯 묘사되어 있다. 무서워서든, 기뻐서든.
그런데 그 사람 위에는 창문이 있다. 만약 그 창문이 열리거나 열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아마 창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메리가 자신의 책에서 말했던 그대로. 그래서 어떻게 보면, ‘클락 선장’이 노란색으로 칠해진 사람이 창밖으로 나가도록 도와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그 사람은 기뻐서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이다.
‘클락 선장’ 왼쪽에는, “바닥이 또 바뀌었다. 천장도 잘못되었다. 천장도 잘못되었다. 이 바닥들의 서명을 누가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손글씨는 내 것처럼 보인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또, “왜 마법이라고 생각하나?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여기와 저기는 쌍방통행로이다.”
좀더 가운데 쪽으로 가면 휘어진 화살표가 그려져 있는데, 그 밑에 “식탁들은 출혈하지 않는다”라고 적혀 있고, ‘출혈’이 빨간색으로 칠해져 있다. 그런데 이 문장들의 글씨체가 길쭉길쭉하고 비뚤비뚤하다. 단정하고 맵시가 있는 클락의 평소 글씨체가 아니다. 글씨체가 바뀐 것이다.
이것이 주요 문구들이고, ‘클락 선장’ 주변의 그림을 살펴보면, 검은색으로 칠해진 사지가 찢긴 사람들이 있고, 노란색 방호복을 입은 사람 세 명이 좌우 양쪽 끝에 그려져 있다. 그런데 그럼체가 공포스럽고 각이 져 있으며 스산하다. 반듯반듯하고 안정감과 친근감을 주는 클락의 평소 그림체가 아니다. 그림체도 바뀐 것이다.
글씨체가 바뀐 것, 그림체를 바뀐 것은 그가 점점 제정신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미로와 같은 그 ‘공간’, 그러나 동시에 숨막힐 정도로 단조로움이 반복되는 그 ‘공간’에, 그는 너무 오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벽화는 관객에게 기괴함만 안겨주는 것이 아니다. 다르게 기능하기도 한다. 영화 속 서사의 메리와 다르게, 관객은 이미 이 벽화의 어떤 요소들, 또는 많은 요소들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벽화 구도의 정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클락 선장’이 있다. 그런데 그 모자 모양을 보면, 그것은 바비를 잡아간 괴물 - 백룸 세계관에서는 ‘엔티티(entity)’라 불리는 - 이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형태다. 이 둘은 같은 존재인 것일까? 만약 그 그림이 ‘클락 선장’의 모습을 띤 엔티티라면, 그것이 위로 던지는 사람은 클락 자신일 가능성이 높다. 그가 메리의 자동응답기에 ‘창문을 열었다’는 메시지를 남겼기 때문이다.
여기서 어렴풋이나마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이 괴물 ‘클락 선장’과 클락의 사이가 어떤 모종의 이유 때문에 좋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니, 더 나아가, 어쩌면 공생관계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메리에게 엄청난 공포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므로 관객에게 있어서 이 벽화는 메리가 곧 직면하게 될 공포를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