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용주 목사(봉헤치로 제일교회 담임)
태초부터, 하나님께서 엄연히 금하신 것을, 자기 마음의 생각대로 보고 좋아서 취하는 것을, 성경은 죄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그런데 죄 가운데 잉태되고 출생한 우리가 보기에는 이것이 그리 심각한 죄처럼 보이지 않는다. 반대로, 많은 경우 우리는 스스로의 생각과 마음대로 우리 삶을 계획하는 것이 옳게 보인다. 바로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교만이다. 우리는 흔히 말이나 태도의 뻣뻣함이나 냉담함을 교만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교만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믿는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에 순종하지 않는 바로 그가 교만한 사람이다.
여러 차례 반복하는 말이지만, ‘기독교인’, 또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단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그의 ‘제자’를 일컫는 말이다.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행 11:26).” 그런데 자기를 믿고 따른다 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자기가 느끼는 대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기를 인정하고 자기를 높이며 사는 사람은 결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인정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반대로, 그것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이라고 경고하신다.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눅 16:15).”
결국 클락은 자기가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곳에서, 죽음의 공포 속에서 바비와 캣을 모두 잃게 된다. 인간의 교만은 결국, 인간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길고도 깊은 죽음의 공포를 드리우게 되는 것이다. 비록 지금, 이 순간, 그 공포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해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교만한 마음으로 행하는 자는 반드시 지옥의 파멸 가운데 놓이게 될 것이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시 1:6).”
메리, 공포와 마주하다(1)
메리는, 어릴 적 엄마와 살던 집이 붕괴되는 꿈에서 깬 어느 날, 클락이 자신의 자동응답기에 남긴 메시지를 듣게 된다. “메리 선생님, 저는 유리창을 열었어요.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예요.” 이 말이 계기가 되어, 메리는 클락의 가구점으로 향한다.
그녀가 가구점 문 앞에 다다랐을 때, 가구점 입구에는 고지서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클락이 그녀의 자동응답기에 메시지를 남긴 때가 벌써 한참 전인 듯했다. 그녀는 가구점에 들어가 주변을 둘러보며 클락을 찾아 헤매다가 지하실에 내려가게 되고, 거기서 설계도 비슷한 것이 그려져 있는 매직보드를 발견한다. 일전에 클락이 그녀에게 보여주며 열심히 설명하던 미지의 ‘공간’.
그 후, 그녀는 하얀 벽에 파란색 테이프로 둘러져 있는 직사각형 모양의 ‘무엇’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그것은 클락이 표시해 놓은 ‘백룸’으로 들어가는 문이었다. 그녀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다가, 파리 한 마리가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한 그녀는 손을 넣어보았고, ‘문 같은 어떤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