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사회 읽기)지연의 문화(Cultura do Atraso)
2026/08/07 03:11 입력  |  조회수 : 1,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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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중 선교사(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박사)

 

 예배 20분 전 스크린에 카운트 다운을 띄운다. 브라질 복음주의교회 모습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다리지 않아도 하나님은 우리를 기다리신다는 믿음의 표현이랄까. 더 중요한 것은 약속시간에 워낙 둔감한 브라질 성도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함이다. 덜렁덜렁 늦게 와서 인사할거 다하고 자기자리 찾아 다니는 친구들을 보며 10분전 자리에 앉아서 경건하게 예배를 준비하던 우리 부모님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십 여년 전 상파울로에 살 때 집 앞에 모노레일이 공사중이었다. 상파울로 지하철 노선 시스템에서 15번-실버라인이라 불렸다. 2014년 6월 월드컵을 대비해서 2009년부터 시작된 프로젝트였는데 여러차례 지연되었고 2014년 8월 운영시간이 축소되고 일부 구간만 보여주기 식으로 개통되었다. 최근에 가보니 아직도 공사중인데 레일을 받치는 기둥이 차지하는 공간 때문에 가뜩이나 좁은 도로가 하루 종일 교통체증에 출퇴근 시간에는 카오스다. 그래도 역 주위로 지대가 오르니 좋아할 사람들은 따로 있겠다. 

 ‘지연의 문화’ (Cultura do Atraso). 브라질의 자화상이다. 낙후성, 후진성의 이데올로기라고 부르고  지체되고 늦는 일상의 모습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보면 유럽 정복자들과 원주민들의 공존에서 시작되었다. 신속하게 효과적으로 자원을 수탈하여 유럽 시장에 팔고 때마다 왕과 권력자들에게 바쳐야 했던 주인들은 이 땅에 시간개념과 약속을 강요했다. 

 어제와 오늘을 구분 짓는 것은 해가 뜨고 지는 것 이외에는 없었던 원주민들의 눈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노예제가 본격화 되면서 주인은 시간을, 노예는 생존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노예 입장에서 하루에 9시간 일하나 6시간 일하나 대우가 똑같다면 굳이 약속을 지켜가며 살 필요가 없다. 아버지가 가정의 모든 결정권을 가진 가부장제에서 여자와 자식은 준비되어 살기보다 아버지의 관심과 유산을 받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체득하게 된다. 

 지방의 정치와 경제권력을 독점한 엘리트들은 실력보다 인맥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다수의 민중은 눈치를 보며 살아간다. 시간보다 중요한 것은 관계이다. 늦어도 가기만 하면 된다. 결과가 중요하지 과정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관료제는 ‘지연의 문화’의 하이라이트다. 작은 권력이나 위치를 가지기만 하면 어느 위치이던지 대가를 요구한다. 단순해 보이는 행정도 잘못 걸리면 함흥차사다. 

 오늘날 브라질 일상에서 약속이나 비공식적인 회의에 30분정도 늦는 것은 일도 아니다. 공공 서비스 분야에서도 약속을 지연하고 늦는 것은 일상이 되었다. 응급실에서도 마트에서도 속도와 정확성보다 중요한 것이 정말 많다. 지역마다 인종마다 사회계층마다 연령대마다 ‘지연의 문화’는  그 모습을 달리하며 깊숙하게 자리잡고 있다. 

 브라질 엘리트들은 이 나라가 가능성의 나라에만 머물고 있는 이유를 ‘지연의 문화’에서 찾고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라고 생각해왔다. 많은 사람들이 고착된 낙후되고 구시대적인 유산이라고 비판하지만 브라질에 이것이 살아가는 방식일 수 밖에 없는 것을 안다.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브라질 정체성의 부분이다.

 브라질 사회의 어떤 기관도 시간약속을 강요하지 않지만 복음주의 교회는 다르다. 미국과 유럽의 영향을 받은 개신교 복음주의 교회는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직선적이고 진보적인 기독교의 역사관 때문에 인생은 목적지가 있고, 앞으로 가야하고,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와 약속, 신의를 가르친다. 현재는 과거보다 나아야 하고, 내일은 오늘보다 좋아야 한다. 멈춰 있을 수 없다. 500년 이상 지속된 브라질의 ‘지연의 문화’의 거대한 연못에 작은 돌 하나 떨어뜨려 줄 수 잇는 복음주의 교회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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