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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에 오자마자 노광우목사가 점심을 사주었다. 학교 근처의 음식점이었는데 나는 잘 모르니 자네가 알아서 주문하라고 했다. 플레이트에 나온 것을 보니깐 밀가루 전병에 고기, 야채, 콩 등을 넣고 둘둘 말아 놓은 것이었다. 어렸을 때 먹었던 빙떡 같았다. 코카콜라와 함께 나왔는데 그 음식이 첫입에 그만 질리고 말았다. 생전 처음 맡는 냄새였다. 이상한 냄새 때문에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먹느라 진땀을 빼고 있는데 친구는 왜 그러냐고 했다. 나보다 2년 전에 미국에 온 친구인데 아주 맛있게 잘 먹었다. 성의를 보아서 맛없다고 할 수 없고 괜찮다고, 맛있다고 하면서 억지로 다 먹었다. 배고프지 않았더라면 아마 먹지 못했을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요즘에는 그렇게 맛있게 잘 먹는 멕시칸푸드 부리토였다. 세상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데다 냄새가 역겨워서 그 고생을 한 것이다.
학교 입학 한지 2주 만에 우리 큰아들에게 부리토 사건이 일어났다. 동네 초등학교에 다녔는데 입학하는 날 교장 선생님이 아주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나에 대한 모든 것을 다 물어 보았다. 나는 목사이고 지금 공부하는 중이고 수입은 한 달 400불 받는다 했고 아내가 피아노 레슨을 해 가면서 겨우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교장 선생님이 특별 배려를 해 주었다. 큰아들은 일 학년이고 둘째 아들은 그 학교 유치원에 다녔는데 둘 다에게 프리런치를 준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몇 번이고 꾸벅이며 인사를 했다. “참 미국이 좋구나, 이런 것도 있구나.” 감사하면서 돌아왔다. 영세민들에게는 런치를 공짜로 준다. 며칠 후에 학교 양호실에서 전화가 왔다. 새미(우리 큰 아이 이름)가 아파서 양호실에 있으니 와서 픽업해 가라는 것이다. 얼른 차를 몰고 달려가 보았더니 큰애가 점심 먹은 것을 운동장에 다 토해 놓았다. 토하고 땀이 나고 얼굴색이 달라지니까 학교에서 나를 부른 것이다. 아이를 차에 태우고 집에 오면서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 “아빠, 미국 음식은 아주 맛있고 영양가가 많다고 했잖아요. 점심에 나오는 음식을 다 먹으라고 해서 먹고 싶지 않은 거 억지로 먹었는데 그만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토해 낸 거예요.” 그날 멕시칸 푸드 부리토를 먹은 것이다. 학교 급식에는 매일 메뉴가 다르게 나온다. 그리고 아이들을 통해 한 달치 점심 메뉴를 프린트해서 집으로 보낸다. 그러므로 매일 점심에 무엇을 먹는지 다 알게 되어 있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부리토 냄새가 역겨워 삼킬 수 없는데, 아빠가 미국 음식은 맛있고 영양가 많으니까 다 먹으라고 말한 것을 생각하면서 꾸역꾸역 다 먹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 식구는 부리토를 좋아한다. 이것은 역설인지도 모른다. 제일 싫어하던 것을 제일 좋아하게 되었다. 아이들도 잘 먹는다. 하시엔다 우리 동네에 빅 브리토 집이 있는데 해프파운드 되는 것을 4개 이상 먹는 사람에게는 100불을 준다고 했다. 그 만큼 양이 많다는 것을 선전하는 것인데 우리는 그것을 즐겨 먹는다. 먹는 것이 천국인 미국, 어떤 사모는 내게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이젠 먹고 싶은 것도 없어요. 맛있는 것을 다 먹어 보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어느 권사님은 야외예배에 가서 점심을 먹으면서 오렌지를 잡수시는데 “나, 미국 다 싫지만요, 오렌지 먹을 때만 좋더라.” 고 해서 한 바탕 웃은 적도 있다. 오렌지는 2월말부터 5월까지 맛이 최고로 좋다. 나도 미국 온지 얼마 안되었을 때 한꺼번에 다섯 개 여섯 개씩 먹은 일도 있다. 그래서 목에서 허옇게 가래 같은 산이 많이 나온 적도 있었다. 정말로 잘 먹고 잘 사는 나라이다.
내가 미국에 오기 전의 한국에서의 삶은 먹을 것이 없어서 굶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모두가 잘 살지만 그때는 참으로 어렵게 살았다. 아이들도 잘 먹이지 못하고 키웠다. 특히 둘째 아들은 아내가 아이를 가졌을 때 먹지 못해서 지금 키가 작고 호리호리 하다. 둘째만 보면 늘 미안한 마음이 있다. 군목으로 나가 훈련을 받는 동안에 아이가 뱃속에서 자라고 있었다. 돈이 없어서 아이의 엄마가 호박죽을 먹으면서 젖을 먹인 것이다. 나오지 않는 젖을 먹이려니 엄마도 고생이요, 아이도 고생이었다. 그때의 아픔을 보상하려고 지금은 둘째에게 맛있는 것을 늘 먹이려고 신경을 쓰지만 잘 먹지를 않는다. 잘 먹고 튼튼해 졌으면 좋겠는데 참 이상한 노릇이다. 지금은 먹고 싶은 것은 다 먹으면서 살고 있기에 우리는 감사하고 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모른다 라는 말이 있듯이 눈물의 빵을 먹으면서 자란 아이들이 지금은 음식을 먹을 때마다 ‘땡큐 갓, 땡큐 맘, 땡큐 대드’ 한다. 가난이 뭔지를 알고 소생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프리런치를 먹으며 미국생활을 했기 때문에 지금 우리 아이들은 절기 때마다 로스앤젤레스 4가와 로스앤젤레스 애브뉴의 홈레스들에게 런치박스를 만들어 나누어주면서 전도를 한다. 그때가 되면 우리 식구 모두가 150여 박스의 점심을 만드느라 분주하다. 점심 봉투에 샌드위치 한 개, 포테이토 칩스 한 개, 과일 하나, 콕이나 세븐 업 캔 한 개를 넣고 겉봉에는 성경구절을 쓴 전도지를 스테이플로 찍어서 준다. 받았던 것을 보답할 줄 아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시 116:12)’ 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 식구는 하나님의 축복을 너무나 감사하면서 기회 있을 때마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이 축복을 나누고 있다. 우리 충신교회에서는 매년 추수감사주일에 홈레스 교회를 찾아가서 성금을 전달하고 과일을 몇 박스씩 전달한다.
영국의 작가 아이작 월톤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은 두 곳이다. 하나는 천국이요, 다른 하나는 감사하는 마음이다” 라고 했다. 감사하는 마음에 행복이 깃드는 것이다. 우리 식구들은 프리런치의 사건을 재미있게 이야기하면서 기쁨으로 좋은 일에 참여하고 있다. 프리런치의 사건은 우리 생애에 오래 오래 남는 이야기 거리이다. 도움을 받았으니 이제는 도우며 살아야지 늘 그런 생각을 한다. 인생에는 세 가지 단계가 있다고 했다. 첫째는 받는 감사이고, 둘째는 감사하는 단계이다. 그리고 셋째는 주는 단계이다. 프리런치는 받는 단계였다. 그러나 이제는 주는 단계로 발전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사랑을 받으려하기 보다 누구에게든지 사랑을 주려 할 때 비로소 성숙한 것이다.
고남철 목사(나성충신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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