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성복 목사(시온성장로교회 담임)
“친절한 행동-친절 혁명을 일으키는 법”이라는 책을 쓴 하녹 맥카티라는 사람이 시카고에서 라디오 토크쇼에 출연했을 때 청취자가 들려 준 내용입니다. 엄마와 어린 수지, 그리고 어린 딸을 잃은 스미스라는 부인이 등장인물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린 딸 수지가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지금 뭐 해?” “이웃집에 사는 스미스 부인에게 갖다 주려고 볶음밥을 만드는 중이지.” 이제 여섯 살밖에 안 된 수지가 또 물었습니다. “왜?” “응, 왜냐하면 스미스 부인이 매우 슬프기 때문이란다. 얼마 전에 딸을 잃어서 가슴에 상처를 입었거든. 그래서 우리가 한동안 돌봐 드려야만 해” “왜 엄마?” “스미스 부인은 다시는 딸과 얘기할 수도 없고, 딸을 껴안을 수도 없고, 딸과 함께할 수 있는 모든 신나는 일들을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단다. 수지, 넌 매우 똑똑한 아이야. 그러니 너도 스미스 부인에게 도움이 되어 줄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을 거야.” 수지는 이 새로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스미스 부인을 돕는 일에 자신도 참여할 수 있을까 봐 깊이 생각했습니다.
몇 분 뒤 수지는 스미스 부인의 집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한참 지나서 스미스 부인이 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수지예요.” “무슨 일이니? 수지야.” “엄마가 그러시는데, 아줌마가 딸을 잃어서 가슴에 상처가 났고, 그래서 아주 아주 슬프시대요.” 그리고 어린 수지는 부끄러워하면서 자신의 작은 손을 내밀었습니다. 손에는 일회용 반창고가 들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입니다. “가슴에 난 상처에 이걸 붙이세요. 그러면 금방 나을 거예요.” 어린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낸 일회용 반창고, 자신이 어디 상처가 나면 엄마가 불러서 상처 난 곳에 붙여 주었던 일회용 반창고, 지금 마음에 상처가 난 스미스 아줌마에게 이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낸 것입니다. 스미스 부인은 그런 수지를 보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수지를 안아주면서 눈물을 글썽이면서 말했습니다. “고맙다. 수지야. 이 반창고가 내 상처를 금방 낫게 해 줄 거야.” 스미스 부인은 수지가 준 일회용 반창고를 잃어버리지 않고 항상 그것을 바라보면서 자기 아픔을 치료받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사진을 넣을 수 있는 작은 열쇠고리 안에 일회용 반창고를 넣었습니다. 그리고 항상 가지고 다니며 그것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상처가 조금씩 치료되어 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여러분, 혹시 마음에 상처가 있습니까? 그 마음의 상처에 이 반창고 한번 붙여 보시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그 일회용 반창고보다 더 좋은 반창고가 성경에서는 하나님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회용 반창고는 한번 붙이고 나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지만, 우리 하나님은 상처가 있을 때마다 그 상처를 싸매시고 치료하시는 분이십니다. 시편 34장 18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고난을 겪을 때, 그 순간 하나님은 고난의 한가운데 계십니다. 질병과 비극과 재난과 기근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고통을 당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 고통을 함께 극복하기 위하여 한 사람씩 그 이름을 불러가며 그 사람들에게 다가가십니다. 하나님은 한순간만 아니라 항상 마음이 상한 자에게 다가가고 안아주시는 선하시고 좋으신 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항상 선하신 분이십니다. 내가 고통을 당할 때도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십니다. 내가 기쁨과 즐거운 가운데 살아가고 있어도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십니다. 나에게 큰 상처가 있어도 하나님은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선하시고 좋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항상 선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아야 합니다. 시편 34편 8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 34편은 제목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라고요. 여기에 아비멜렉은 당시의 그 지역을 통치하던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그 사람은 가드왕 아기스였습니다. 그리고는 다윗왕은 아둘람 굴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 400명의 사람이 아둘람 굴로 찾아옵니다.
환난 겪고 시련 당하고 억울한 일을 겪어서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고 피할 곳도 없는 이들이 제 발로 아둘람을 찾아 왔습니다. 여기에 가도 원통함을 풀어주지 못하고 저기에 가도 이 억울함을 풀어주는 이가 없어서 떠돌던 사람들이 아둘람 굴로 왔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있는 다윗도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윗 자신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합니다. 여기에 오기 직전에 자신도 살기 위하여 침을 질질 흘리면서 미친 척하다가 여기에 온 상황입니다. 다윗 자신도 원통하고 애통으로 가득 찼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습니다. 위로해 주고 싶었습니다. 안아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시를 지어 그들 앞에서 낭독합니다. “너희가 지금은 나에게로 나왔지만 나는 너희의 원통함을 풀어 줄 수가 없다. 나는 너희의 억울함도 해결해 줄 수가 없다. 내가 너희를 일일이 다 위로해 줄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하나님은 너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은 너희의 피난처가 되신다. 하나님은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하신단다. 그러니 우리 함께 하나님께로 나아가자. 하나님만이 진정한 피난처가 되신단다.” 그렇습니다.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을 위로한다는 것, 용기를 준다는 것, 안아준다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기에게 찾아온 그 사람들에게 방향을 바꾸어 진정한 위로자 되시는 하나님을 향하게 하였습니다.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하십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이 치료받고 강건할 수 있기를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