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명 목사(나누리선교회장)
우리 부부는 지금 이태리와 스위스를 여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꼭 가 보고 싶었던 나라가 이스라엘과 이탈리아 로마였는데 이스라엘은 가 보았고 이번에 미국에 사는 작은 아들이 우리 생일선물로(아내와 내가 같은 달) “어머니 아버지 더 나이가 드시기 전에 가 보고 싶어 하셨던 이태리 다녀오세요”하며 여행비를 주어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태리하면 나에게는 부끄러운 추억이 있어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내가 고등학교 때 외교관이 되고 싶어 외국어 대학교에 원서를 내러 가서 보니 제1지망과 제2지망 과를 신청할 수 있어 제1지망은 국제 외교 행정학과를 선택했고 제2지망은 어디로 할까 하다 아무 생각 없이 이태리어과를 정했습니다. 시험을 치르고 신문에 난 합격자 발표를 보니 내 이름이 없어 떨어졌구나... 하며 실망하고 있는데 친구가 전화로 “수명아 합격 축하한다”, “무슨 합격?”, “너 외국어 대학 이태리어과에 네 이름이 있던데”, “그래?” 하며 신문을 다시 보니 이태리어과에 내 이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 입학해 이태리어과에서 공부하는 동안 내가 원했던 국제 외교 행정학과가 아니라 공부도 하고 싶지 않아 1학년 때 휴학하고 공군에 입대한 후 다시 복학했지만 역시 이태리어에 취미가 없어 공부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겨우 졸업을 했습니다. 얼마나 공부를 안했느냐 하면 학점을 못 따서 6개월 더 공부하여 후기 졸업을 했습니다. 지금도 공부한 성적표를 보면 대부분 C학점이라 사람들에게 외국어대학 이태리어과를 졸업했다는 말을 잘 하지 않습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쯤 미국에서 살던 사촌 형님이 한국에 나와 함께 무역회사를 시작했는데 1년 만에 문을 닫고 형님은 기아 산업에 들어간 후 얼마 후 이사가 되었고 나는 직장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때 형님이 나에게 미안해서 하루는 자기 집에 오라고 하여 가 보았더니 외국 사람이 와 있었습니다. 형님이 나에게 “너 이태리어과 나왔지? 이분이 이태리 피아트 자동차 회사 부사장이시다”하며 저를 소개하였습니다.
그때 기아 산업이 이태리 피아트(FIAT) 자동차를 판매할 때라 형님이 나를 이태리 지사로 보낼 계획이었는데 가만히 보니 내 이태리어 실력이 빵점이라 포기했습니다. 식사하는 동안 나는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불편했고 얼굴이 화끈거렸고 창피했습니다. 나는 그때 사람이 아무리 좋은 기회가 와도 준비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미국에 가서 일하며 신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힘들고 어렵게 공부한다는 소식을 들은 뉴욕에서 전도사로 일하는 사촌 누님이 전화로 “수명아 왜 그렇게 영어로 어렵게 공부하냐 여기 뉴욕으로 와서 한국말로 하는 신학교에서 공부해라 나이도 있는데 빨리 마쳐야지”하는 소리에 마음이 흔들렸지만, 예전에 겪었던 창피한 일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아 꾹 참고 공부를 마쳤더니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가 되니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셔서 지금도 쓰임 받게 하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잠언 22장 29절에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는 말씀대로 인내하며 준비했더니 때가 되니까 말씀대로 해 주십니다.
그래도 창피한 추억이 있는 나라이지만 가 보고 싶었던 나라를 여행하니 설레고 기대가 됩니다.
60년 전 학생 때 배웠던 이태리 말들을 거의 다 잊어버렸지만 안녕하십니까(본 죠르노), 감사합니다(그라찌에), 정말 감사합니다(몰때 그라찌에), 미안합니다(미스꾸지), 괜찮습니다(스타이 베네), 잘합니다(브라보), 아주 멋있습니다(게 벨로)라는 말들은 지금도 기억이 나서 이번에 이태리 사람들에게 많이 말하고 올 계획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이십니다. 감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