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용주 목사(봉헤치로 제일교회 담임)
1. 최후의 백색회의
엘론드가 다스리는 깊은골에서 열린 백색 회의는 절대반지를 없애려는 목적을 가진 모임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절대반지에 현혹되지 않고 악마 사우론의 영토인 모르도르 한가운데에 위치한 ‘운명의 산’ 분화구까지 가지고 가서, 그것이 만들어진 분화구에 던져 넣어야 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것이 만들어진 곳에서 그것을 파괴해야 하는 것이다.
성경은 로마인들의 단죄의 도구인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단죄를 받고 죄를 없이 하였다고 말한다. 이것을 영국의 청교도 신학자인 존 오웬은 “그리스도의 죽음 안의 사망의 종말(The Death of the Death in the Death of Christ)”, 직역하면 “그리스도의 죽음 안의 죽음의 죽음”이라고 멋지게 표현하였다. 톨킨은 이 동일한 아이러니를 그대로 절대반지에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길은 험난한 길이다. 성경도 이것을 ‘좁고 협착한 길’이라고 표현한다. 또한 이 길은 절망적인 길이다. 성공할지 할 수 없을지, 이성적으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예상되지 않는 것은 인간에게 불안과 공포, 그리고 절망을 안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절대반지를 가지고 적진 한가운데의 운명의 산 분화구까지 선뜻 가려고 하지 않는다. 회의에 참석한 누군가가 이렇게 말한다. “반지를 만들어 낸 그 불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가 누구입니까? 그것은 절망의 길입니다.”
2. 어렵지만 가야 하는 길
그러자 간달프가 말했다. “절망이란 의심할 바 없는 끝이라고만 바라보는 자에게나 어울리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가능한 방법을 검토한 뒤 남은 필연을 인식하고 있고, 그것은 오히려 지혜입니다. 거짓된 희망에 매달리는 자들에게는 그것이 어리석게 보이겠지요.”
엘론드가 말을 받았다.
“우리는 그 길을 가야 합니다. 매우 어려운 길이지요. 하지만 강한 자나 지혜로운 자는 멀리까지 갈 수 없습니다. 그것은 강한 자만큼의 희망을 가진 약한 자가 가야 하는 길입니다. 사실 역사의 수레바퀴를 움직인 것은 그런 방식이었습니다. 강한 자들의 눈이 다른 곳에 닿고 있는 동안 작은 손들은, 바로 자신들이 해야만 하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반지의 제왕』 제 2권 2장 119쪽)
절망의 길 앞에서, 사람은 회피하려 한다. 그 끝이 의심할 바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확실하고 커 보인다. 그러나 성경은 바로 그것이 절망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지혜는 모든 가능성 가운데 유일하게 남는 필연을 잘 아는 것이라고 한다. 비록 그것이 매우 어렵고 험난한 길일지라도.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길이며, 그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의 길이다. 이 세상적 사고방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길이다.
“군기를 손에 높이 들고”라는 찬송가의 후렴은 이렇다. “Not to the strong iso the battle, not to the swift is the race, yet to the true and the faithful victory is promised through grace.” 직역하면, ‘강한 자나 빠른 자가 아닌, 진실되고 신실한 자가 승리한다’. 바로 이것이 엘론드가 한 말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