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순 권사(배우리한글학교장, 연합교회)

 공항은 밤과 낮, 휴일도 없이, 일년 삼백 육십오일, 사람들이 갖가지의 사연을 가방 안에 싣고 이곳을 통해 목적지로 향하게 하는 곳이다. 사람들의 모습이 다르듯, 그들의 사연 또한 다양하다. 나의 사연은 친구의 아들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공항을 찾은 것이다.

 무리일 수 있는 일을 감내하고 결혼식에 참석한 여행 얘기를 하려고 한다. 짧은 여행 일정을 형편에 맞추다 보니 새벽에 떠나는 비행기편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드디어 떠나는 날 긴장이 풀리기도 했고 정상적인 잠자리에 들 시간이어서인지 좌석에 앉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났을 거라는 느낌이 드는 동시에 뭔가 석연치 않은 불안한 생각에 눈을 떴다. 깜깜해야 할 기내가 훤하고 창 밖을 보니 날이 점점 밝아온다. 잠결에 언뜻 이륙이 좀 늦어질 거라는 안내 방송을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시계를 보니 아침 6시 30분, 세 시간 가까이 기내 안에서 머무르고 있었던 것이다. 중간 지점인 도하 공항에서의 연결 시간의 간격은 고작 두 시간 삼십 분, 여유 시간이 없는 것을 미리 알고 떠난 지라 아무리 계산해도 연결 비행기를 타기엔 불가능한 일이다. 애써 여유를 가지며 침착하게 연결 지점에서의 대책을 생각해야만 했다. 만약, 만약에 비행기를 놓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가장 빠른 비행기로 갈아타고 어느 나라를 경유해서라도 결혼식에 참석해야 될 거라며 궁리를 한다. 나의 여행 결정이 무리는 아니었나? 지나친 오지랖은 아니었는지, 별의별 생각에 젖는 사이 나의 걱정과 상관없는 무심한 비행기는 한 시간의 여유를 남기고 긴 시간 끝에 도하에 도착해 갈아 타는 안내 팻말을 찾아 전력 질주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순조로웠으나 여러 갈래의 갈림길에 다다르자,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잡지 못하겠다. 바로 그 때 짐을 실어 나르거나 거동이 불편한 여행객을 위한 커트가 내 앞에 다가 선다. 물론 나를 위한 것은 아니었으나 얼떨결에 손을 흔들어 그 커트에 올라탔다. 질풍같이 내달린 커트의 도움으로 예정된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극적인 탈출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이다. 게다가 뻔뻔한 부탁을 받아준 여승무원의 도움으로 국제 전화를 걸어 마중 나올 식구들을 안심시키기까지 했다. 여유로운 잠이 밀려오며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기도가 자동적으로 쏟아져 나온다. 드디어 도착한 결혼식, 힘든 세월을 견디어 내고 반듯한 의사로 키워 낸 아들을 결혼시키는 친구의 홀로 앉은 뒷모습이 너무 서러워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흐른다. 아! 정말 오길 잘했구나. 마음 쓰며 애타게 달려온 비행의 시간들이 한꺼번에 무마되어진다.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향수’의 작가 정지용 시인의 생가를 이번 여행길에 방문했다. 친구와 함께 한 여행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문학관 입구에 들어서니 붓글씨로 쓴 다섯 폭의 족자가 눈에 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에들 잊힐리야......]

 고국의 드높은 가을 하늘과 아름다운 친구의 마음을 뒤로하고 또 다른 나의 목적지에 데려다 줄 공항에 앉아 글을 쓴다. 기다림이 있고 만남이 있는 공항이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글 장을 뒤적이다가 몇 해 전에 쓴 글을 발견하고 친구를 그리는 마음으로 다시 정리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