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순 권사(배우리한글학교장, 연합교회)
매스컴이 고마운 건 사실이지만 지나친 과잉 광고와 보도는 대중들의 판단력을 흐트려뜨리기 일쑤다. 풍작으로 농작물이 넘치게 되면 각종 음식에서 이 농작물의 영양가가 최고라며, 이것을 꼭 먹어야 장수하고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호들갑스레 방송을 통해 혹은 신문 지면을 통해 선전해댄다. 우루루 그 해에 풍작인 농산물은 이렇게 되어 소모된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의,식,주...... 아직까지 코로나를 겪고 있는 우리네 일상에서는 [의]에 대해서는 그리 큰 의미를 두지 못하고 지내는 반면, [식]에 관해서는 여러모로 통달한 수준이라고 봐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배달 음식이 늘었고 집밥이 음식 중에 최고라며 먹는 일에 목숨을 거는(?) 듯한 먹거리들이 수두룩 쏟아진다. 문화와 뗄 수 없는 음식은 나라마다 다르고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공통된 음식이 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전통음식인 것이다. 특별히 한국인의 식성에 맞는 음식을 여럿 중에서 꼽는다면 단연코 김치일 것이다. 김치는 일찌감치 자리를 잡아 세계화에 발돋움했고 고맙게도 기내 음식의 영향으로 비빔밥이 김치의 뒤를 잇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오늘 어느 틈에도 끼진 못했지만 500년간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대표적인 한국인의 식재료 중에 하나인 콩나물에 관한 얘기를 하려고 한다. 중학교 시절, 너나 할 것 없이 어려웠던 그 시절에 나의 단짝 친구의 엄마는 콩나물 장사를 하셨다. 시루를 머리에 이고 매일같이 시장에 나가 좌판을 의지해 콩나물을 파신다. 그 친구가 나는 무척 부러웠다. 콩나물을 파는 엄마를 둔 친구는 용돈이 궁색하지 않았지만 쥐꼬리만한 월급쟁이의 부모를 둔 나는 늘 용돈에 목이 말랐다. 한국인 열 명 중에 여덟 명이 하루에 한 번 콩나물을 먹는다는 통계가 있고 중국과 일본도 적지 않게 음식 재료로 소모한다고 한다. 나물, 국, 찜으로도 손색이 없고 감초처럼 음식에 얹혀만 놓아도 맛은 물론 모양새도 좋게 보이는 콩나물, 소설에서 만나 보았다. 양명호 작가의 [콩나물 시루]는 8편의 글이 실려 있는데 그 중에 [콩나물 시루]는 ‘[딸아이의 수업료에 조금이라도 보탬을 주려고 키우기 시작한 콩나물... 그러나 엄마는 결국 콩나물 시루에서 풍성하게 자란 콩나물을 보지 못하고 떠난다]’ 줄거리만 보면 콩나물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내용은 딸을 위한 엄마의 희생적인 사랑이 눈물겹게 나타난 얘기다.눈물샘을 조절해야 읽을 수 있는 추천도서이다. 콩나물을 키우는 기본은 ‘물만 주면 된다’에 걸맞게 물을 스쳐 받기만 해도 콩은 본래의 콩의 모습을 벗고 싹을 내며 새롭게 나물이라는 식물로 둔갑한다. 기본적인 것만 생각하면 엄청 키우기 쉬운 일 같지만..... 얼만큼의 물을 주어야 하는지, 언제 주어야 하는지..... 날씨와 시간, 심지어 콩이 자라는 장소의 분위기까지 아주 미세한 것까지 신경을 써야하는 것이 콩나물 키우기라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는 것 같다. 콩나물 키우기는 마치 교육을 하는 것과 흡사하다고 생각한다. 언제 물을 주고 어떤 방법으로 줘야하는지에 따라 수확물의 결과가 달라지듯이 어떤 방법과 내용으로 교육을 해야 그 효과가 보람된 결과로 남는지...... 늘 고민하며 신경을 쓰는 일이 동일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일에 필요한 경제 생활에, 아니 이런 고급진 표현이 아닌 직설적인 말로 돈벌이에, 콩나물 키우기가 나의 삶에 한 부분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한국도 아닌 브라질 땅에서 말이다. 일은 의미와 재미가 공존해야 비로서 보람으로 남는다. 식물을 키우는 일이나 사람을 교육하는 일에 기술과 실력이 필요함은 당연하지만 우선되어야 할 일은 사랑과 책임이 바탕에 있어야 함을 노랗게 피어 오른 콩나물 시루를 보며 오늘도 또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