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호영 목사(워커스미니스트리 대표)
중등부 시절 은사님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런데 이 분은 만날 때마다 “얘가 어릴 적에..”하시며 내 옛 이야기를 주위 사람들에게 폭로하신다.(스승의 은혜..) 그런데 그렇게 모두를 즐겁게 해 주신 후(나만 빼고..) 정말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을 꺼내신다. “호영아 참 너 그 때 왜 이마 양쪽머리를 면도칼로 밀고 다녔냐?” 그러면 모두 놀라 날 쳐다본다. 난 벌떡 일어나 이렇게 말했다. “어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말 나온 김에 다 설명 드리겠다.
사실 사춘기 때 내 얼굴은 정말 동그랗고 애때보였다. 그리고 그 때는 그게 그렇게 싫었다. 모두 귀엽다 했지만 난 “멋있다”, “남자답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더욱이 당시는 요즘같이 기생오라비같은 아이돌들이 아닌 울그락 불그락 ‘아놀드 슈와츠네거’, ‘실버스터 스텔론’같은 근육질 배우들이였기 때문에 나의 남성미를 향한 욕망 또한 날로 더해갔다. 하지만 내 외모는 모두 반대였다. 짜리몽땅, 오동통, 동글댕글. 그러니 난 어떻게든 이 비주얼에서 탈출하고자 안간힘을 썼다. 특히 동그란 얼굴은 볼도 크니 안경도 안 어울려, 모자도 안 어울려, 차라리 조폭처럼 생겼으면 무섭기라도 하지, 완전 Baby Face라 남성미는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난 배우들을 관찰하며 대체 남자답고 성숙해 보이는 얼굴의 비밀은 무엇인가 연구했다. 그러던 중 ‘아 이거다!’ 할만한 단서 하나를 찾았다. 그것은 바로 이마 위 양쪽 부분이 위로 약간 파여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얼른 거울로 달려가 내 머리를 치켜들어 이마를 확인했다. 그런데 역시.. 어째 난 여기도 이리 동그랗단 말인가? 완전 여자 이마다. 짜증이 확 나면서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이번엔 정말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용기를 내어 이마에 물을 묻히고 비누칠을 한 뒤 세면대에 있던 아버지의 면도기로 아주 조심히 양쪽 이마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럴수가? 정말 조금씩 내가 원하던 얼굴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뭐라할까? 좀 각져 보이고, 길어 보이기도 하며, 남자다워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난 그렇게 처음엔 사람들이 잘 못알아 차리도록 이마를 조금씩 파고는 돌아다녔다. 효과가 있었다. 친구들도 “너 좀 달라졌다?”하며 묻는 일들이 잦아졌다. 나는 점점 자신감을 찾았고 그렇게 매일 면도기로 이마 양쪽을 매일 아침 열심히 밀었다. 그런데.. 드디어 문제가 발생했다. 그것은 바로 매일 밀던 부분들이 시간이 가며 점점 퍼래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매일 손질을 한다며 나도 모르게 조금씩 더 깊이 파고 들어가 나중엔 대머리 초기증상처럼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낭패였다. 결국 나는 안어울리는 모자를 쓰고 다니다 어느 무더운 여름 잠깐 벗는다는 것이 그 선생에게 들켜 폭로되었고 모든 학생 앞에서 개망신을 당했다. 그리고 약 2주는 교회를 나가지 않았던 것 같다. 남성미 좋아하다 완전 망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웃음만 나온다. 남성미, 그게 뭐 그리 보여져야 한다고.. 남성미 없어보인다고 남자 아닌가? 하지만 당시는 그게 그리도 중요했다. 내 안에 무엇이 있는가보다 보이는 것이 그리 중요했다. 중년이 된 지금 과연 나는 변했는가? 가만 들여다 보니 아직도 내 안에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이 꿈틀거린다. 언젠가 난 또 지금의 내 모습을 회상하며 웃고 말겠지.
사역하다 말고 함꼐 하는 청년에게 물었다. “00야, 솔직히 말해봐. 네가 나를 딱 볼 때 어떤 인상이 풍기니? 남성미가 같은 게 넘치니?”. “네? 아.. 아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