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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중 선교사(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박사)
대통령 선거
브라질 대통령 선거가 뜨겁다. 10월 3일 투표에서 예상을 깨고 플라비우(Flávio)가 룰라(Lula)를 2% 차이로 앞섰다. 과반을 얻지 못했지만 놀라운 결과다. 인지도도 경험도 없는 45세 젊은 정치인이 아버지의 후광를 엎고 보수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 10월 25일 결선 투표를 앞두고 10월 13일 BTG/Nexus 여론조사가 눈에 띈다. 9일부터 12일까지 유권자 2,002명을 대상으로 한 전화면접조사에서 플라비우 52% 룰라가 48% 나왔다. 오차범위 ± 2퍼센트에 신뢰 수준 95% 이다.
4% 차이는 작지 않지만 룰라 입장에서는 충분히 뒤집어 볼만한 판이다. 룰라는 선거 전문가다.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지난주 대도시의 룰라 유세에 보았듯 늙은 호랑이는 브라질 전역에 건재하다. 20년 이상 잡았던 정권을 쉽게 내어주지는 않을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과 유류세 인하 카드도 있고 함께 해 먹었던(?) 중도세력도 움직이고 있다. 플라비우는 방심하면 바로 패배다. 치열한 승부가 예상된다. 더 흥미로운 조사는 가톨릭 신자 중 룰라 지지는 51% 플라비우는 44% 다.
반면 복음주의자들의 성향은 놀랍다. 플라비우 58% 룰라 32%다. 룰라의 완벽한 패배다. 가톨릭 신자들은 룰라를 조금 더 선호하지만 플라비우를 싫어하진 않는다. 그러나 복음주의자들은 플라비우를 지지하고 룰라를 혐오한다.
가톨릭과 복음주의
브라질 정치판은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기도 하지만 가톨릭과 복음주의의 대립이기도 하다. 가톨릭교회와 복음주의교회는 노골적인 정치행위로 영향력을 행사한다. 최근 브라질 수호성인인 아파레시다 성모(Nossa Senhora Aparecida)에 대한 양 후보의 태도와 심리와 신앙까지 논쟁이다. 얼마나 브라질을 사랑하고 리더의 자격이 있는지 종교를 통해 검증하고 싶어한다. 국가와 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과거에서 이제는 종교가 링에 올라가 양 코너에 자리잡고 있다. 그만큼 복음주의는 브라질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가톨릭신자와 복음주의자 사이의 역동적인 관계는 인구구조 변화, 도덕적 가치에 대한 논쟁, 그리고 분열된 선거 성향을 통해 드러난다. 30년 전만 해도 가톨릭이라 주장하는 인구가 80%였는데 지금은 절반으로 떨어졌다. 그 사이 복음주의자들은 10%에서 30%까지 올랐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고 있다. 브라질에서 가톨릭과 복음주의는 다르다.
한국과 미국에서는 교리와 신앙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그럴 필요도 없다. 하지만 브라질에서 복음주의는 가톨릭과 양립할 수 없다. 존재가 크지만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가톨릭은 성례와 의식, 절차, 위계질서, 선행, 공동체 가치를 중심으로 개인의 믿음과 사회적 책임을 누군가에게 맡긴다. 신앙의 외주화(Terceirizar a fé) 현상이다. 반면에 복음주의자들은 ‘내가’ 믿고 ‘내가’ 책임지는 신앙이다.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이고 오직 예수로 개인의 회심을 핵심가치로 여긴다. 복음주의 입장에서 가톨릭은 여리고 성이다.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지배한 가톨릭은 복음주의 앞에 우뚝 서있다. 가톨릭 입장에서는 복음주의는 위협이다. 아무도 건들지 못했던 건물, 재산, 성도, 신앙과 교리에 정면으로 대항하고 있다. 복음주의는 브라질에서 종교지형 변화를 넘어 사회전반의 구조를 바꾸고 있다.
복음주의의 길
다수의 가톨릭 유권자들이 중도좌파에 우호적이였던 것은 1960년 군부 권위주의 정권시절 사회적인 불평등 개선과 인권운동에 앞장 섰고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돌봤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시민사회, 농촌공동체는 룰라의 노동자당(PT)의 핵심 지지층이었다. 그렇지만 가톨릭교회가 정치권력에 취하면서 이제는 지지했던 당도 교회도 영향력을 잃고 있다. 복음주의자들은 룰라를 버렸고 플라비우 쪽으로 붙었다. 아버지 보우소나루 전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복음주의자라고 선언한 상황에서 전 영부인 미셸리도 조수에 발란드로(Josué Valandro) 목사님이 시무하는 리오의 침례교회(Igreja Batista Atitude)의 독실한 신자다. 복음주의 진영에서 이제는 상원의원이 된 미셸리의 인기는 남편보다 높다. 따라서 플라비우가 굳이 자신의 신앙을 내세우지 않아도 이미 표는 붙었다. 복음주의교회는 수가 늘어가면서 정치세력화 되었다. 정치인을 교회가 키우고 당선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아야 할 것이다. 정치권력을 잡으려고 한 교회는 결국 망한다. 극우성향으로 위에서부터 나라를 고치려 했던 보우소나루의 실패를 반복하면 안된다. 복음주의교회는 가톨릭교회가 실패한 가족의 가치, 교육의 백년대계, 윤리적인 이슈를 선점해야 한다. 위를 바라보고 소수 엘리트를 중심으로 자유와 성장에 방점을 찍되 언제나 고개를 숙이고 다수가 있는 아래를 돌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