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환의 쓴소리, 단소리)‘콜럼버스 데이’,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2026/10/16 04:28 입력
트위터로 기사전송 페이스북으로 기사전송 미투데이로 기사전송 다음요즘으로 기사전송

조명환.jpg

조명환 목사(크리스천위클리 발행인)

 

 스페인 마드리드를 여행할 때 ‘빠에야’나 ‘하몽’보다 내가 더 눈여겨본 것은 콜럼버스 동상이었다. 마드리드 콜론 광장 높은 기둥 위에 서 있는 콜럼버스 동상은 신대륙이 있는 서쪽을 바라보고 서 있다. 한 손에는 카스티야 왕국의 깃발을 쥐고 있고, 다른 손은 신대륙을 가리키고 있다.

 그런데 마드리드에서 한참 떨어진 바르셀로나의 유명한 람블라스 거리 맨 끝자락에 서 있는 콜럼버스 동상은 오른손을 번쩍 쳐들고 지중해 너머를 가리키는 모습이다. 그 모습에서 항해사의 기개, 혹은 정복자의 기세마저 느껴진다.

 스페인 왕실이나 우파 진영에서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도착한 10월 12일을 스페인 최대의 국경일 중 하나로 기념한다. 이날에는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도 열린다고 한다.

 그러나 진보 진영이나 좌파, 혹은 스페인에게 끊임없이 독립을 요구해 온 카탈루냐와 같은 지역에서는 콜럼버스를 ‘침략과 학살의 상징’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강하다. 특히 바르셀로나 등 일부 지역에서는 그의 항해를 유럽의 아메리카 진출과 원주민 사회가 겪게 된 비극의 출발점으로 비판하면서 공식적인 기념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콜럼버스가 항해 후원을 간청하기 위해 이사벨 여왕을 만난 곳 가운데 하나가 바르셀로나였다. 오늘날 바르셀로나에서는 콜럼버스를 단순한 ‘발견자’가 아니라 원주민 착취와 노예화가 뒤따른 유럽의 식민 확장의 상징으로 재평가하려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스페인 일부 지역에서 콜럼버스가 이렇게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다니, 나는 스페인 여행 중에 “허 참, 안된 일이구만” 하는 정도로 넘겨버린 적이 있다.

 그런데 스페인만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콜럼버스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린다. 10월 둘째 월요일은 여전히 법으로 정해진 연방 공휴일인 ‘Columbus Day’이다. 그러나 실제 기념 방식은 지역에 따라 상당히 달라졌다. 주 정부와 지방정부, 학교나 각 기관에서는 이 날을 다른 명칭으로 부르거나 원주민의 역사를 함께 기념하는 등 그 의미와 기념 방식이 달라지고 있었다.

 그 배경에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노예화에 관여했다는 역사적 기록과 함께, 유럽인들의 아메리카 진출 이후 원주민 사회가 전쟁과 강제노동, 토지 상실, 질병 등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있다. 그래서 ‘콜럼버스 데이’ 대신 ‘원주민의 날(Indigenous Peoples’ Day)’로 기념하는 지역도 적지 않다.

 그럼 우리는 콜럼버스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내 생각은 이렇다. 콜럼버스를 완전한 영웅으로 만들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그의 이름을 원주민에게 가해진 모든 비극의 상징으로 만들어 역사에서 지워버리는 것도 올바른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탈리아 출신인 콜럼버스가 스페인의 이사벨 1세와 페르난도 2세의 후원을 얻어 1492년 대서양을 건넜을 때, 아메리카에는 이미 수많은 원주민 공동체가 살아가고 있었다. 따라서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했다’고 표현하는 것은 그곳에 이미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오래된 표현이다.

 유럽인들의 도착 이후 원주민 사회가 전쟁과 강제노동, 토지 상실, 질병 등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역사의 다른 한쪽도 보아야 한다.

 콜럼버스는 당시의 지리적 지식과 항해 기술에 의지해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던 서쪽 바다로 나아갔다. 아시아로 가는 새로운 항로를 찾겠다는 그의 계획은 여러 차례 거절당했지만, 끝내 스페인 왕실의 후원을 얻었고 1492년 대서양을 건넜다.

 그는 자신이 아시아에 도착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의 항해는 결과적으로 유럽과 아메리카 사이의 지속적인 접촉을 촉진하면서 세계사의 방향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말년에는 스페인으로 압송되어 지위를 박탈당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고, 병마와 싸우다 세상을 떠났다. 그는 죽을 때까지도 자신이 도착한 곳이 아시아의 일부, 혹은 인도라고  믿었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원주민을 ‘인디언(Indians)’이라고 부르게 된 것도 그가 아시아에 도착했다고 믿었던 데서 비롯된 표현이다.

 또 하나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신대륙이 콜럼버스의 이름을 따서 ‘콜럼비아’라고 불리지 않고 ‘아메리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유다.

 콜럼버스 이후 남아메리카를 탐험한 이탈리아 출신 항해가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이 땅이 아시아의 일부가 아니라 ‘새로운 대륙’이라고 주장했고, 이후 지도 제작자들이 그의 이름을 따 ‘America’라는 명칭을 사용하면서 오늘날의 이름이 자리 잡게 되었다. 콜럼버스 편에서 보면 억울한 일이기도 하다.  

 분명 콜럼버스는 위대한 항해가로 평가받는 동시에 식민주의와 원주민에 대한 폭력의 역사와 떼어놓을 수 없는 논쟁적인 인물이다. 오늘날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이처럼 크게 엇갈리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므로 콜럼버스 데이를 맞는 우리의 자세는 어느 한쪽의 목소리에만 치우쳐서는 안 될 일이다. 원주민들이 겪었던 고통과 희생을 기억하면서 동시에 미지의 바다를 향해 나아갔던 항해가의 도전과 그가 세계사에 남긴 변화도 함께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nammicj@hanmail.net
"남미복음신문" 브라질 유일 한인 기독교 신문(nammicj.net) - copyright ⓒ 남미복음신문.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