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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용주 목사(봉헤치로 제일교회 담임)
오라클을 만나다(10): ‘배반하는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사랑하고 믿는 사람은 모두 그의 제자라고, 성경은 말한다. 바로 그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 조건을 제시하신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자신을 가장 사랑하라는 것에서 나오는 이 세 가지 조건들은 예수님이 친히 모든 제자들, 즉 기독교인들에게 전제하신 조건이기 때문에, 타협이나 완화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네오가 밖으로 나오자, 모피어스는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한다. “그분이 너에게 말씀하신 것은 오직 너에게 [또는, 너를 위하여] 하신 거야.” 그 후 그들은 이제 매트릭스에서 나갈 준비를 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무엇인가가 바뀌었다. 네오는 귀환 지점으로 가면서 동일한 검은 고양이 둘을 보고 “데자뷔(Déjà vu)” 라고 중얼거린다. 프랑스어로 ‘기시감’이라는 뜻이다. 그가 중얼거리는 것을 듣고, 일행은 두려움에 휩싸이는 표정을 짓는다. 영문을 모르는 네오에게, 트리니티가 설명한다. “데자뷔는 매트릭스가 무엇인가를 바꿀 때 나타나는 현상이야.”
그렇다. 매트릭스는 그들이 비밀리에 시스템 안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귀환 지점의 환경을 바꾸어 그들의 퇴로를 차단한 후, 요원들을 파견한 것이었다. 이쯤 되면 관객들은 이미 안다. 싸이퍼가 일행을 배신한 것이다! 그는 매트릭스에 들어오자마자 휴대전화를 켜 놓은 상태에서 버렸다. 매트릭스가 그 신호를 포착하여 그들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게 한 것이었다.
사실 싸이퍼는 처음부터 네오를 탐탁치 않게 여겼다. 네오에게 신 맛이 도는 독한 술을 건네고, 자기가 요원들과 몰래 접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숨긴다. 어쩌면, 갑자기 어떤 새내기가 들어와서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상황이 싫은 것이었을 수도 있다.
또는, 자기가 짝사랑하는 트리니티가, 그동안 동고동락한 자기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다가, 네오가 나타나자 온통 그만 쳐다보는 것을 견딜 수 없어서 그런 것이었을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영화에 나오지 않은 다른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그의 배신을 정당화할 수 없다. 동기가 무엇이었든 간에, 그는 일단 매트릭스에서 빠져나와 그에 저항하는 공동체에 속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는 평생 감사함으로 살아가며, 인류 공동의 적에 대항하는 것에 모든 것을 희생해야 했다. 실제로 그의 삶의 어느 순간까지는 제법 그렇게 살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배반하는 자가 되었다.
마태복음 13장은 예수님께서 베푸신 천국 비유 여덟 개가 모아져 있는 곳이다. 그 중 맨 첫번째는 바로 ‘씨 뿌리는 자의 비유’라는 명칭으로 잘 알려져 있는 비유이다. 이 비유는 네 가지 형태의 신앙이 제시되는데, 첫째는 ‘길가’이고 둘째는 ‘돌밭’, 셋째는 ‘가시밭’이고 넷째는 ‘옥토’이다. 예수님의 설명을 보면, 씨앗은 하나님 나라의 말씀, 즉 복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네 가지 토양은 말씀을 받은 사람들의 반응이다. ‘길가’는 말씀에 대한 아무런 반응이 없는 사람이다. ‘돌밭’은 반대로,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마 13:20)”,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눅 8:13)”이다. 싸이퍼는 어쩌면 ‘돌밭’과 같은 부류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