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환 목사(크리스천위클리 발행인)
‘신시아 에리보’는 나이지이라 출신 영국 흑인 여배우다. 지난주일 저녁에 열린 금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가 주연한 뮤지컬 ‘위키드(Wicked)’가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떨어지고 말았다. 이 영화는 미술상, 의상상에 그쳤다. 내가 그 영화를 보진 못했지만 TV에서 보는 이 영화 광고에는 머리를 박박 밀은 신시아 에리보가 초록색 피부를 갖고 있는 초록 마녀 엘파바로 열연하는 모습이 비쳐지곤 했다. 마녀라 해도 초록색 피부에 머리까지 없으니 좀 흉해보였다.
그런데 이 신시아 에리보가 금년 여름 내가 살고 있는 LA의 ‘할리웃 볼’ 야외음악당에서 공연예정인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이하 수퍼스타)’에 예수역으로 캐스팅되었다는 것이다. 흑인 예배우가 예수 역을? 내 맘속엔 당장 이래도 되는 거야?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1971년 브로드웨이에서 처음 막을 올린 ‘수퍼스타’는 가롯 유다의 시선을 통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을 당하신 고난주간 일주일을 재해석한 내용을 담은 뮤지컬이다. 브로드웨이 스타일의 록 뮤지컬이 생소했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큰 화제가 됐고 종교적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음악적 완성도가 높아서 많은 사랑을 받은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예수 역에 흑인 여배우라... 더구나 신시아 에리보가 양성애자로 알려지자 이건 신성모독이란 반대여론이 일고 있는 중이다. 반대 측에선 예술적 창의성에 관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며, 우리의 신앙과 전통에 대한 고의적 모욕이란 주장이다. 지당하신 말씀.. 난 이들의 주장에 기꺼이 한 표. 그런데 찬성의견도 있기는 하다. “예수를 백인 남성만 하라는 법 있냐?” “시대가 어느 땐데 이런 게 논란?” 등 에리보를 지지하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예술분야의 신성모독 논란은 수없이 많았다. 1988년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만든 ‘예수의 마지막 유혹’은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 예수님이 겪는 인간적인 갈등과 유혹을 다루면서 특히 인간적인 사랑과 욕망을 경험하는 장면 때문에 기독교의 반발을 샀다. 2006년의 ‘다빈치 코드’란 영화는 예수님과 막달라 마리아가 결혼해서 후손을 남겼다는 설정을 포함하고 있어 신성모독 이란 비판을 받았다.
미술에서는 1987년 안드레스 세라노란 작가가 ‘오줌 예수(Piss Christ)’란 사진작품을 발표했는데 이게 무슨 작품이냐면 십자가상의 예수님 고난의 모습을 자신의 소변에 담근 작품이었다. 아이고, 우째 이런 일이... 어떤 사람은 전시장에서 이 작품을 파괴하려는 시도까지 벌였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세라노는 “나는 하나님의 군사”라며 아주 믿음이 쎈 척 말하고 다녔다고 하니 세상엔 참으로 별일도 많다.
레오날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역시 지금은 아주 중요한 기독교 성화로 존경받지만 초기에는 유다와 예수님의 관계, 그리고 다짜고짜 여성이 등장하는 것처럼 보이자 논란이 일기도 했었다. ‘비틀즈’의 존 레논은 “비틀즈는 예수보다 유명하다”는 교만 방자한 발언 때문에 비틀즈 음반이 불태워지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가수 ‘마돈나’는 1989년에 나온 ‘Like a Prayer’란 뮤직 비디오에서 난데없어 흑인 성자가 등장하고 십자가가 불타는 장면이 연출되어 기독교의 반발을 불러일으킨 적도 있다.
마드리드에 있는 ‘스페인의 가보’라고 자처하는 프라도 미술관에는 보쉬란 화가의 ‘쾌락의 정원’이란 그림이 있다. 프라다에서 꼭 봐야 할 그림으로 손꼽히는 이 그림을 구경하려고 나도 땡볕에 서서 한 두 시간을 기다린 추억이 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이 그림에 반하는지 모르겠다. 보쉬는 중세와 르네상스 사이의 과도기적 화가로 초현실적 종교화를 많이 그린 화가다. 쾌락의 정원은 기괴한 인간과 괴물, 천사와 악마가 혼재한 장면, 그리고 성적인 암시와 천국과 지옥을 아주 기괴한 방식으로 표현한 점 때문에 이단적이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직접적인 교회의 탄압은 받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수퍼스타’는 원래 성경의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록 뮤지컬이기 때문에 이번 신시아 에리보의 캐스팅도 현대적 해석의 일부라고 봐야 하는 건가?
더구나 요즘 브로드웨이에서는 젠더 블라인드 캐스팅(배역의 성별을 고정하지 않는 캐스팅)이 일반화되고 있다고 한다. 예수님은 역사적으로 남성이었지만 그의 가르침과 정신은 성별과 인종을 초월한 보편적 메시지를 담고 있고 그래서 그 분의 인류애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있어 꼭 남성 배우만 필요 한가?란 질문엔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에게 예수님은 신성한 존재요 그 역사적 정체성을 바꾸는 것은 신앙의 본질을 훼손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더구나 예수님이 실존인물이었음을 감안하면 그를 흑인여성으로 묘사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과 어긋나는 과격한 변화라는 주장은 당연한 것 아닌가?
다만 예술적 자유와 재해석이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지, 또 신앙적 정체성과 문화적 해석사이에 어떻게 균형을 잡아가야 옳은 일인지, 그리고 다양성과 포용성을 확대하는 것은 언제나 좋은 일인지를 놓고 고민해 보기는 해야 한다. 에라, 모르겠다. 금년 8월 할리웃 볼 가는 일은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