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복 목사의 복음과 삶)은혜에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2024/11/08 22:13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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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복 목사(시온성장로교회 담임)

 

 옛날 영국 황제 루이스가 민정을 살피기 위하여 국내를 순시하는 도중에 시골 동네 한 모퉁이에 있는 물방앗간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물방앗간에서 기뻐서 부르는 노래가 들리길래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노랫소리에 도취 되어 듣고 있다가 물방앗간 안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 안에는 노인이 기뻐하며 즐겁게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황제가 물었습니다. “그대는 무엇이 그렇게 기쁘고 즐거워서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런 노래를 부르고 있는가?” 그랬더니 노인이 하는 말이 이렇습니다. “예,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니 그 은혜가 얼마나 감사하고 좋은지 제 입에서 저절로 이런 노래가 나옵니다.” 그래서 황제는 그 노인에게 조금 전에 불렀던 노래를 다시 청하니 그 노인은 노래하였습니다. “세상 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나도 역시 세상 사람 부럽지 않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황제는 조용히 듣다가 본인도 받은 은혜도 있고 노인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니 이 노인이 자기보다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둘째 절은 이렇게 불러 보아라. 세상 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영국 황제 루이스가 날 부러워하네.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 아래 사는 사람들은 너무 감사하여 한순간도 은혜받은 것을 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찮은 물방앗간에서 일하고 시간을 보낸다고 해도 하나님의 은혜만 생각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절로 찬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에든버러 세인트 조지 교회에서 목회하던 화이트 목사는 어느 날 오후 늙고 가난한 여인을 방문했습니다. 화이트 목사가 가서 기도해 주고 말씀을 나누기 위해서 갔는데 그 목사님이 머무르고 있던 20분 동안 그 여인은 모든 것들에 대해 불평하고 또 불평했습니다. 그러나 화이트 목사는 그저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화이트 목사가 돌아가려고 일어나 그녀와 악수를 하고 인사를 한 후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성도님 명심하세요. 성도님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마세요.” 그렇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면 모든 것이 불평과 원망의 대상이 됩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들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그 은혜를 잊어버리지 말고 받은 은혜를 꽉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그럼 하나님께 받은 은혜란 무엇일까요? 그 은혜가 무엇이길래 이렇게 기뻐서 좋아서 찬송하며 살아갈까요? 로마서 6장 14절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그렇습니다. 은혜라는 것은 우리가 죄에서 벗어나게 된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서는 죽을 수밖에 없고,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죄를 사해 주심으로 아무 자격이 없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 천국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 그래서 영원히 살게 되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아래에 살면서도 그 은혜를 모르고 은혜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너무도 많습니다. 왜 그런가요? 은혜를 받지 못한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한 문제는 받은 은혜를 잘 지켜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적게 주셔서 문제가 되었던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여전히 은혜가 부족한 것은 받은 은혜를 지켜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보세요. 우리가 은혜를 충만하게 받았을 때는, 마음에 기쁨이 가득하고, 모든 죄악에서 이긴 것 같고, 어떤 시험도 이길 것 같고, 모든 이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사는 사람들은 그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자신의 몸을 육신의 욕망에 죄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와의 반대로 자신의 몸과 지체를 하나님을 위하여 드리고,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고, 죽은 사람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사람처럼 감사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은혜 아래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 여인처럼 입을 열 때마다 불평불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있는데, 하나님께 드려진 몸인데, 어찌 원망과 불평이 가득할 수 있나요? 물방앗간에서 일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에 세상 사람 부러워하지 않고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는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 아래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아름답고 멋있는 방법입니다. 

 성경에 보면 은혜받은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홍수 심판 앞에서 은혜받은 노아, 꿈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 고난 속에서 은혜받은 요셉, 애굽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 조국과 성전을 사랑하는 느헤미야, 모든 순간에 은혜받은 다윗, 아기 예수를 낳게 된 마리아, 고통과 고난 가운데 은혜받은 사도바울 등 수 많은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 주셔서 우리를 죄악에서 건져 주시고 고난 가운데서도 구원받은 우리는 은혜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는 지금 우리에게 계속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과거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어느 시대에나 힘들고 어려운 모든 분에게 똑같은 은혜로 이끄시는 분입니다. 애굽에서 고통받고 있던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이 지금 여러 가지 문제들로 고통당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리라 확신합니다. 

 바울은 사람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고백합니다. 고린도전서 1장 4절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리고 자신에게 주신 은혜를 고전 15장 10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요. 이런 고백과 감사가 여러분을 향한 저의 고백이고 감사입니다. 그리고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은혜 가운데 살아가며 남라다 감사하는 행복한 삶이 되시기를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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