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성 목사의 복음자리 이야기)[북한기독교역사사전]이 곧 출간 된다
2024/10/04 02:22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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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성 목사(브라질선교교회 담임)

 

 유권사님! 오랜만에 한국의 기독교역사연구소에서 한통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문명철 목사’ 항목에 대한 청탁입니다. “기독교는 해방 이전 북한에서 가장 교세가 큰 종교였으며, 해방 이후 월남 기독교인들은 종교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기독교는 과거와 현재 모두 남북 교류가 가장 활발하였던 종교이며, 통일 이후 북한 선교에 대한 관심도 다른 종교보다 월등하다”고 전제하면서 사전 발간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문명철 목사 관련 집필 요청받아

 “향후 남북교류 및 탈북민 선교, 통일 이후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북한 기독교사에 대한 종합적인 정보를 수록한 사전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사전 발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발간의 범위를 “분단 이후 월남한 1세대 기독교인들의 고향 교회에 대한 기억과 경험이 유실되지 않도록 정리보존하고, 이들의 역사를 한국교회는 물론 통일세대에게 전달함으로써 이후 북한 선교의 토대를 마련하고자한다”고 사전 발간의 취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주어진 집필항목은 [문명철]이었습니다.

 문명철 목사는 브라질에서 이민 1세들의 이정표와 같은 목사입니다. 6.25전쟁 당시 반공포로 출신이고 중립국을 통해서 인도에서 브라질로 와서 정착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입니다. 문명철 목사는 “만주 훈춘에서 태어나서 함경북도 웅기로 옮겨 농사일을 하며 소년시절을 보냈습니다. 그의 나이 20살에 한국전쟁이 터졌고 인민군 징집을 피해서 홀로 피난했습니다.” 그리고 포로수용소로 보내진 과정은 이렇습니다. “함경남도 원산에서 유엔군 배를 얻어 타고 부산항에 도착하는데 성공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포로수용소로 보내졌습니다.” 포로수용소에서 휴전을 맞았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행선지를 고를 기회가 주어지자 남한이나 북한이 아니라 중립국으로 갈 것을 지원했습니다. 문목사는 “인도를 거쳐 1956년 2월 브라질 상파우르에 정착했습니다.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이역만리에서 온갖 역경을 딛고 신학석사, 종교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강성철, 김용식 목사가 더 적임자라고 생각

 뿐만 아니라 일반심리학, 교육심리학, 과학방법학 등을 전공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문명철 목사는 “브라질 감리교신학대학 교수, 상파우르 메트로 폴리탄 대학교수, 메도디스트 대학교 교수, 메토디스트교육대학장, 상파우르 브라질감리교회 목사를 역임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상파우르 동양선교교회 담임목사를 역임했습니다. 1997년 초에 그의 대표적인 책 [슬픔도 고통도 짜우 짜우]는 한국의 두란노 서원에서 발행되었습니다. [슬픔도 고통도 짜우짜우] 앞부분 5페이지 흑백 사진이 편집되어 있습니다. 포로수용소에서 인도에 도착했을 때 포로복을 입은 사진을 시작으로, 브라질에 도착했을 때 문명철 목사사진, 포로수용소에서 맹의순 선생에게 받은 성경책, 인도 LEONARD신학대학 전경, 수련회, 강희동 목사와 함께 찍은 사진, 미국유학시절의 사진, 고향인 만주 훈춘 옛 학교 선 문목사 부부의 사진이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눈에 띠는 사진은 “메토디스트 대학 총장, 광림교회 김선도 목사 등과 함께”라는 사진 설명이 담긴 1992년의 사진입니다. 그리고 화보 마지막 페이지에는 “현재 문명철 목사는 브라질 상파우르 동양선교교회에서 목회에 전념하고 있다”는 사진설명과 그의 강단에 선 모습, 그리고 동양선교교회 전경 사진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는 7단원으로, 1부 나를 살린 증명서 한 장(23-78페이지), 2부 엿으로 바뀐 아버지의 혁대(79-146페이지) 3부 맹의순 선생 이후의 포로 정신병동(147-198페이지), 4부 사탈호수에 빠져(199-230페이지), 5부 하나님의 계획표에 따라(233-278페이지) 6부 애인이 겨우 한사람이에요?(279-300페이지), 7부 슬픔 외로움 고통도 짜우짜우(301-351페이지)입니다. 제가 어렵게 소장한 이 책은 “S.P.OMC. 1997년 3월 9일 문명철 드림” 친필 사인이 들어 있습니다.

 유권사님, 저는 기독교역사연구소의 사전 편찬에 청탁받은 것을 귀하게 생각하지만, 저보다 상파우르에 먼저 정착해서 훌륭한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강성철 목사나, 관련 학위 논문을 쓴 김용식 목사가 더 적임자라고 생각하고 그들에게 문명철 항목을 쓸 것을 요청하는 중입니다. 그리고 그들과 의논해서 북한 출신 인사가 더 있으면 인명사전에 항목 추가를 요청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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