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용주 목사(봉헤치로 제일교회 담임)
캐스피언: 진리를 향한 여정
그날 밤, 캐스피언 왕자는 삼촌 미라즈 왕의 성에서 도망쳐야 했다. 오랫동안 친아들이 없던 숙모 프루나프리스미아 왕비가 아들을 낳았기 때문이다. 삼촌은 늘 이렇게 말했었다. “너도 알다시피 나와 네 숙모에게는 아이가 없으니, 내가 세상을 뜨면 네가 왕이 되어야 할 것이다. 너도 왕이 되면 좋겠지?”
그러나 이제 삼촌의 왕위를 이을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후계 구도를 위해 지금껏 살게 두었던 캐스피언은 제거될 것이 분명했다. 캐스피언이야말로 나니아의 적법한 왕이기 때문이다. 그의 가정교사인 코르넬리우스 박사는 그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왕자님께서는 캐스피언 왕의 아드님이지만 왕이 아니십니다. 왜 여태껏 한번도 제게 그 이유를 묻지 않으셨습니까? 왕자님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미라즈가 왕위를 찬탈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자 캐스피언이 말했다. “그런데 이제는 삼촌이 나까지 죽이려 한다는 얘기인가요?” 코르넬리우스는 말했다. “거의 확실합니다... 이제 아들이 생겼으니 자기 아들이 다음 왕 자리에 오르기를 바랄 것이 뻔합니다. 왕자님은 방해물만 될 뿐입니다.”
그래서 캐스피언 왕자는 코르넬리우스 박사의 조언에 따라, 당시 나니아를 다스리던 텔마르 족이 유령이 가득하다고 믿던 ‘어둠 숲’으로 말을 달렸다. 그 역시 코르넬리우스의 말을 따른 것이었다. 그는 ‘어둠 숲’이란 유령으로 가득한 곳이 아니라, 진짜 나니아 민족인 말하는 동물들이 사는 곳이라고 말해주었다. 이것은 두 가지 좋은 점이 있었다. 하나는 미라즈의 병사들이 숲에 대한 공포 때문에 추격을 멈출 것이라는 점이고, 또 하나는 아직도 그곳에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 진짜 나니아 민족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꽤 오랜 세월 동안 박사는 캐스피언에게 나니아의 진짜 역사를 가르쳐 왔다. 나니아라고 불리는 땅은 동쪽 바다를 건너온 아슬란이라는 위대한 사자가 창조한 나라이고, 인간이 말하는 동물들을 다스리는 나라이고, 말하는 동물들은 말하지 못하는 동물들을 돕는 나라라는 것을 말이다.
사실 이 사실을 맨 처음 캐스피언에게 말해준 사람은 그의 유모였다. 캐스피언은 유모의 ‘옛 나니아’에 대한 이야기들을 좋아했고, 믿었다. 그러나 미라즈가 그 사실을 알게 되자, 유모를 당장 내쫓아 버렸다. 그리고 코르넬리우스 박사를 가정교사로 초청한 것이었는데, 이제 그가 유모의 일을 이어받아 계속해서 ‘옛 나니아’에 대하여 가르쳐왔던 것이다.
캐스피언을 떠나보내며, 코르넬리우스는 그에게 ‘수잔 여왕의 나팔’을 쥐어 주었다. 그리고 정말 다급할 때만 쓰라고 신신당부하였다. “그렇게 캐스피언 10세는 선조들의 성을 떠났다.”
캐스피언이 미라즈 성을 떠난 이유는 물론 일차적으로 그의 목숨이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굳이 ‘어둠 숲’으로 몸을 피한 것은 유모와, 특히 코르넬리우스 박사의 말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미라즈 왕과 텔마르 족이 전설과 신화로 치부해버린 - 또는 왜곡하고 조작해버린 - 나 니아의 역사가 진짜임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무엇이, 아무 것도 모르는 그가 유모와 코르넬리우스의 말을 믿게 하였을까? 그것은 바로 그들의 인격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