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성 목사(브라질선교교회 담임)
유권사님, 우리나라에 성씨(姓氏)는 몇 개쯤 될까요? 양반천민 구분이 있던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상놈계급이라고 알려진 7대 성씨는 천방지축마골피(天方地丑馬骨皮)로 알고 있는데 정말 천민계급이었던 것일까요? 이런 궁금증을 해소하려고 여러 자료들을 뒤져보았습니다.
천방지축마골피(天方地丑馬骨皮)는 과연 천민인가?
천天은 무당, 방方은 목수, 지地는 지관, 축丑은 백정, 마馬는 말 다루는 백정, 골骨은 뼈 다루는 백정, 피皮는 가죽다루는 백정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천민에게는 성이 없었단 주장도 있습니다.
그럼 전 국민이 성을 갖게 된 때는 갑오경장(1894년)이후이며 갑오경장 이전에는 전 국민의 30%정도만 성이 있었다고 합니다. 일제가 한국인들의 통치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 민적법(民籍法)을 시행하면서 천민들도 주인의 성을 쓰거나 원하는 성으로 호적을 등록하여 누구나 성을 갖게 했습니다.
천민들은 성을 갖게 되면서 김(金) 이(李) 박(朴) 등 대성(大姓)이나 사회적으로 흔한 성씨, 혹은 주인의 성씨를 택했다고 합니다. 백성(百姓)이란 말은 ‘온갖 성씨’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으나 나중에는 일반서민을 가리키는 용어로 정착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유권사님! 역사적으로 성씨의 변천과정을 살펴보니 조선시대의 ‘세종실록지리지’에는 250개의 성, ‘동국여지승람’에는 270개의 성이 나오고, 이의현이 쓴 ‘도곡총설’에는 298개의 성이 있었다고 보고합니다. 15세기 이후 지금까지 한국인 성씨는 대략 250개 안팎이라고 알려져 있고, 2000년 인구센서스에 의하면 286개 성씨 4,179개의 본관이 있답니다.
그렇다면 앞에서 천방지축마골피는 정말 천민계급의 대표적인 성씨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론은 아니라고 합니다. 영양 천天씨와 온양 방方씨, 충주 지地씨 등은 중국에서 귀화한 성씨로 명문세족이었다고 합니다. 이순신 장군의 장인 방진은 온양 방씨로 보성군수 출신의 무관이었다고 하며, 충주 지씨는 태조 이성계와 사돈을 맺을 정도로 고려 말 높은 벼슬을 한 집안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축丑씨와 골骨씨는 남한에는 존재하지 않는 성씨라고 하네요. 또한 지관이나 목수는 천민계급이 아니라 중인계급이며 특별히 지관은 과거시험에서 음양과에 합격해야 지관이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음양과는 천문학, 지리학, 명과학으로 나눠지는데 오늘날로 말하면 기상청, 건축과 지적직 공무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 286개 성씨 4,179개의 본관이 존재
성씨와 관련해서 한번 요동치던 때는 일제의 민적법으로 창씨개명(創氏改名)이 이뤄지던 시기입니다. 누구든지 성이나 이름을 개명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창씨는 의무사항이었고 개명은 자유였습니다. 예를 들면 친일파였던 윤치호(尹致昊)는 이동치호(李東致昊)라고 창씨만 개명을 했습니다. 그의 친일을 밉게 보던 동시대 사람들은 “이똥 치워”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고 저는 본관이 하동(河東)이며 성은 정씨(鄭氏), 이름은 찬성(燦成)으로 여심수(如心水)란 아호를 받아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오늘이 참으로 귀합니다.
거기다가 그런 자부심이 브라질 영주권과 운전면허증에는 자필 사인 옆 란에 어머니, 아버지(Soonhee Park, Hunchai Jung) 순으로 함께 적어서 모계중심사회의 흔적과 부모님 성함이 전혀 다른 문화에서도 본관을 대신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