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용주 목사(봉헤치로 제일교회 담임)
아슬란(2): 나니아의 구세주
둘째, 나니아의 아슬란은 구세주이다. 그는 자신이 창조한 나라가 거대 악에 노출되고 멸망에 이르게 되자, 자신의 생명을 바로 그 거대 악 앞에 내어 놓는다. 그가 창조한 피조물과, 무엇보다도 그가 나니아에 데려온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나니아 연대기』 제 2권 “사자와 마녀와 옷장”에서, 페번시 가 4남매 중 하나인 에드먼드는 처음에 아슬란 편에 가담하려고 하다가, 그가 나니아에 오자 마자 만난 하얀 마녀 제이디스가 약속한 ‘터키 젤리’에 대한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그만 형제들을 배신한다. 다른 아이들, 즉 피터와 수잔과 루시는 비버 부부와 함께 아슬란에게로 가, 에드먼드의 처지를 알리고 그를 구해줄 것을 부탁한다. 아슬란은 군대를 보내 에드먼드를 구출하나, 그 때 악마의 역할을 하는 하얀 마녀 제이디스가 와서 “저 배신자”의 피 값을 요구한다.
아슬란은 에드먼드를 살리기 위하여, 그 대신 스스로 죽는 것을 선택한다. 그리고 하얀 마녀에게 나아간다. 그녀는 자기에게 죽임을 당하기 위하여 가장 연약한 고양이처럼 잠잠하게 나아온 아슬란을 기고만장하게 비아냥거리며 이렇게 말한다. “네가 이런다고 그 배신자 놈을 구할 수 있을 성싶으냐? (…) 네가 죽으면, 내가 그 놈을 죽이지 못할 것 같으냐? 이후에 내 손아귀에서 그 놈을 빼앗을 자가 있겠느냐? (…) 너는 네 목숨은 물론 그 놈의 목숨도 구하지 못하게 된 거야. 그런 줄이나 알고 절망하면서 죽어라.” 영화에서는 이 뒤에 조롱하는 한마디를 덧붙인다. “이 모든 것이 [고작] 사랑을 위해서라니(Too much for love).”
신적 존재를 죽일 수 있다는 것은 그가 물리적 생명체의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보았듯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빌 2:6-7)”, 즉 자기가 창조한 피조물의 형체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슬란은 다시 살아난다. 하얀 마녀가 읊는 ‘심오한 마법’, 즉 ‘모든 배신자는 자신의 합법적인 포로로서 자신에게 속하며, 죽일 권리도 자신에게 있다”는 법칙에 따라 에드먼드 대신 아슬란을 죽였지만, 다시 살아난 아슬란은 ‘더욱 심오한 마법’에 대해 말한다. ‘결백한 자가 배신자의 죄를 대신하여 스스로 목숨을 바치면 죽음 그 자체가 무효가 된다.’
이것은 나니아에서 아슬란을 조금 아는 것이다. 이제 우리 세계에 존재하는 아슬란, 성자 하나님에 대해서 보도록 하자. 성자 하나님께서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시고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말한 사도 바울은, 다른 서신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엡 1:20-21).”
바로 이것이 ‘더욱 심오한 마법’이다.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목적은 하나님을 배신한 우리 대신 죽으시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죽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셔서 죽음 그 자체를, 그 무서운 권세를, 무효화 시키시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은혜다. 배신자가 바랄 수 없는 놀라운 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