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순 권사(배우리한글학교장, 연합교회)

 일년에 사계절이 있다는 게 이론으론 분명한데 날씨의 감각이 뭉그러진 탓인지 그저 그날의 날씨가 늘 그렇지, 하면서 산 세월이 점점 길어 질수록 감정도 덩달아 둔탁해지고 무디어지는 요즘이다. 예전엔, 정확히 말하자면 젊었을 때라고 해야 맞는 말이 되겠지만, 그 때에는 지나치게 모든 일에 예민해 별거 아닌 일에도 밤송이처럼 찔리기 잘하던 인간관계, 누구의 삶에 방식에도 슬그머니 끼어들어 태도가 어쩌고 저쩌고..... 강 건너 불 구경하듯 우린 21세기에도 여전히 예기치 않은 죽음과 사투하는 전쟁의 아픈 얘기들을 무슨 궁금한 이야깃거리로 만들며 매스컴에 귀 기울인다. 지금은 더위를 이기느라 시원한 계절, 가을과 겨울을 상상한다.

 한국은 지금 세계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저출산 국가다. 어릴 적 국민학교 시절, 보통 한 반에 60명씩 열 다섯 반이 한 학년에 있었는데 학교마다 꾀죄죄한 애들의 수는 다시 셈 할 필요도 없겠다. 거저 주는 옥수수 빵도 고작 한 반에 10개 미만, 그것을 먹고 싶어하던 당시에 배고픔이 지금도 선명하다. 출산의 비율을 나라에서 정해주며 가족 계획을 광고하고 홍보하더니 오늘에 와서는 아이가 없다며 출산을 강요한다. 아이가 없는 나라, 일꾼이 없는 나라 한국은, 요즘 외국 유학생들의 인력 충원으로 상권을 유지한다고 한다. 유명 관광지인 지방 도시에 외국 학생들이 알바생으로 일하는 현장의 모습을 텔레비전을 통해 봤다. 이들은 한국어를 잘 배울 수 밖에 없다. 생계의 수단이 되기도 하니까. 하지만 이들이 나라를 이끌고 나가기엔 한계가 있다. 외국인이 다른 나라에 합법적인 국민이 되기까지는 그 절차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고 이들의 목적이 단지 돈을 벌어 학업을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가기까지 잠깐 머무는 정거장이 한국이라면 정체성에 문제도 사실 심각한 일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나라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필요한 인력이라면 고마운 일이다. 더위를 잠시 잊으려는 몸부림으로 채널을 훔치다가 시청을 하게 된 얘기가 이상하게 흘러 들어왔다. 한동안 이어지고 있는 찌는 듯한 더위에 잠자기가 영 불편하다. 추위가 없어 난방비가 안 든다며 다행으로 여기고 사시사철 어려운 살림에 옷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고 그토록 비싼 바나나는 강냉이보다 저렴한 가격이라며 열심으로 먹더니 지금은 빨리 상한다며 잘 사지도 않는다. 사람의 생각과 감정이라는 것이 환경에 따라 변화됨을 단지 적응이라는 말로 또는 습관이 되었기에, 하면서 위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 계절 중에 어느 계절이 좋으냐고 물으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의 물음과 똑 같다. 단풍으로 시를 쓴 법정 스님이 글이 내 꼴과 같다는 생각을 하니 나는 가을이 좋은 것 같다. 

 [가을 바람 소슬하니 하는 수 없이 너도 옷을 갈아 입는구나, 붉은 옷 속 가슴에는 아직 푸른 마음이 미련으로 머물고 있겠지, 나도 너처럼 늘 청춘인 줄 알았는데.... 세월 따라 가다 보니 육신은 야위어 갔어도 아직도 내 마음은 이팔청춘 붉은 단심인데, 몸과 마음이 따로 노니 주책이라 할지도 몰라 그래도 너나 나나 잘 익은 지금이 제일 멋지지 아니한가!]

 밤송이와 같이 뾰족하던 날카로운 신경이, 둔해 간다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고 초록은 지쳐 물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일까! 요즘 내 주위에는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나눠도 불편한 기색이 없는 지인들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