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복 목사(샬롬선교회)
연세대를 졸업한 후 수필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오혜령 씨가 있습니다. 그는 미션 스쿨을 다녔기 때문에 기독교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이 살아 계심을 안 믿으려 하고 신앙생활은 인생의 실패자들이나 매달리는 그것으로 판단하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물을 던지면 얼마든지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다” 이런 그는 자기 과신 때문에 예수 없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40대 나이에 위암과 임파선 암을 진단받고 3개월 시한부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는 날마다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매일 달력의 숫자에 빨간 색연필로 빗금을 쳐나가면서 죽을 날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예정된 죽음의 날짜가 며칠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물만 먹어도 토하고 혈변을 보는 고통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때 매 주마다 꽃을 보내주는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날도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메모와 함께 백합 50송이를 보내왔습니다. 그는 반 시간 가까이 꽃에 얼굴을 파묻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정신이 몽롱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대로 가면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갑자기 그녀의 목덜미를 낚아채는 강한 손길을 느꼈습니다. 직감적으로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를 찾아오셨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의 그물이 텅 비어 있을 때 주님께서 실패의 현장에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는 반사적으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당신은 대체 누굽니까? 왜 죽음의 한복판에까지 따라서 오시는 것입니까?” 그 말을 내뱉고 나자 그동안 주님을 나 몰라라 하면서 마음대로 살았던 자기 죄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해 왔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회개해야 할지 몰라 하는데 그저 눈물만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난 후 며칠 동안 화선지에 붓글씨로 자기 죄를 회개했습니다. 그렇게 회개하기를 반년 가까이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기도와 찬양을 하며 예배를 혼자 드리고 있었는데 온몸에 오한이 덮쳐 왔습니다. “이제 죽는 시간이 다가왔구나.” 하면 죽음을 예감했습니다. 너무 추워서 이불깃을 잡아당기는데 겨드랑이에 잡히던 임파선 암 덩어리가 만져지지 아니하는 것이었습니다. 어깨에 복숭아씨만 하던 멍울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또 복수로 차올랐던 배가 꺼져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살아 계신 주님이 자기를 찾으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의 그물은 고기로 가득 차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너무너무 감사해서 쓴 책이 “당신 없는 인생은 빈 그물이오니”라는 책이었습니다.
그 책의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한다면, “당신 없는 생의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물고기가 잡히기를 바랐던 지난 나날들은 죽은 시간이었습니다. 오 주님 이제 당신께서 그물을 채워주시옵소서. 그러면 저는 비로소 살 것입니다. 인생의 가장자리에 서 계신 부활의 주님, 당신 없이 한평생 수고해 보아야 우리 인생은 빈 그물이옵니다.” 말씀에 불순종하는 삶, 하나님 없는 수고, 하나님 없는 고기잡이, 빈 그물이라는 것입니다. 그걸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오혜령 씨를 보면 축복과 저주가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 붙잡고 순종의 길을 가니 축복의 길이 열리고, 주님을 멀리하고 불 순종의 길을 가니 자기에게 저주의 길이 열리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 없는 인생은 빈 그물이오니’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11장 26~28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오늘날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좇으면 저주를 받으리라” 하나님은 우리 앞에 축복과 저주를 두시고 우리의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선택하라고 하십니다.
마치 아담 앞에 생명 나무와 선악과를 두신 것처럼 말이죠.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복과 저주가 있는데 누가 저주를 선택할 어리석은 사람이 있겠는가? 라고요. 그래서 또 보았지요. 정말 사람들이 저주를 선택하지 않고 복을 선택하는 지혜로운 사람들인가 하고요. 그런데 거의 모든 사람이 아담과 같았고 하와와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말을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그런데 그 열매를 따 먹었습니다. 그걸 먹으면 죽는 줄 알면서도요. 이것이 사람이라고요. 우리는 어떻습니까? 복과 저주가 있는데 복만을 선택할 자신이 있습니까? 복과 저주가 그 앞에 있는데도 복을 선택하기보다는 저주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입니다.
사울을 볼까요? 사무엘상 15장 22~23절을 보면 “사무엘이 (사울에게)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사울의 선택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까? 자기에게도 유익이 되었습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도 못하였고 자기에게도 유익이 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함으로 사울이 하나님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어떤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복입니까? 저주입니까? 이 두 가지를 묻는다면 거의 모든 사람이 복을 선택합니다. 저주를 선택할 어리석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질문을 이렇게 바꾸어 보시지요. 순종입니까? 불순종입니까? 그 복과 저주는 나의 선택에 따라 다르게 나에게 옵니다. 우리에게 중립은 없습니다. 어떤 앞날을 기대하고 살아가십니까? 순종이냐? 불순종이냐? 둘 중에 하나입니다. 순종을 선택하면 복이, 불순종을 선택하면 저주가 다가옵니다. 어떤 결정을 하면서 살아가시겠습니까? 당신은 현명한 선택자이기를 소망합니다.
(YouTube : 강성복목사 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