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환의 쓴소리, 단소리)자이언 캐년에서 눈물이 나다
2023/06/10 18:2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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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 목사(크리스천위클리 발행인)

 

 30년 만에 자이언 캐년 국립공원에 갔다. 우리는 미국식으로 자이언, 자이언 하지만 우리말로는 시온(Zion)이다. 시온이란 구약성경 시편과 이사야서에 많이 나오는 말로서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작은 언덕을 가리킨다. 현재 시온산에는 베드로 통곡교회, 마가의 다락방, 다윗의 묘가 있는 곳이다. 자이언 캐년을 우리말로 풀어보면 ‘시온의 골짜기’란 말이다. 그런데 시방 예수살렘 시온산과 자이언 캐년을 비교하면 이름만 같을 뿐이지 초가집과 궁궐의 차이라고나 할까? 우선 크기가 비교가 안된다. 적갈색 사암들이 거대한 병풍 마냥 하늘을 찌를 듯 우뚝우뚝 솟아있는 장엄한 경관은 보는 사람들의 숨이 막힐 정도로 중압감을 자아낸다. 브라이스 캐년, 그랜드 캐년과 함께 미 서부 3대 캐년중 하나인 이곳은 우리 한인들도 몇 년에 한번씩은 찾는 곳이다. 한국에서 온 친척들이 가자고 졸라대는 것도 이유 중 하나다. 그런데 난 30년 만이다. 지금은 어른이 된 국민학생 두 아이를 끌고 공원 입구에서 캠핑을 했었다. 그때는 그냥 한적한 국립공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우선 공원을 뺑뺑 도는 셔틀버스를 타지 않고는 어디 주차할 곳을 찾을 수 없다. 시스템도 달라지고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지.. 그래도 여기 왔으니 하이킹은 해야지 하고 비교적 어렵지 않은 리버사이드 하이킹 코스를 택해 걷기로 했다. 캐년을 가로지르는 버진 리버(Virgin River)를 따라 가는 코스다. 생각했던 것 보다 강물이 제법 세게 흐르고 있었다. 하이킹을 하면서 압도적인 자세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거대한 바위들이 내게 말을 걸었다. “아니 30년 동안 뭐하고 이제 왔냐? 그동안 뭐해 먹고 살았는데? 살기는 잘 살고? 착하게 살려고 노력은 했겠지? 남에게 사기 친 건 없고?” 표정하나 까딱하지 않고 이렇게 바위들이 말을 걸어 오는 바람에 하이킹 코스가 예기치 않게 참회코스로 바뀌려는 순간이었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이 따로 없었다. 내 인생을 되돌아보는 묵상코스로 변했다. 정말 나는 이민와서 지금까지 잘 살아온 것일까? 30년 만에 만난 이 거대한 바위들은 변하지 않고 한결같이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나는 지금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많이 변한 모습으로 이들 앞에 서 있는가? “응답하라”고 마음속으로 소리치고 있었다. 난 지금 30년 전과 어떻게 다른 모습이 되어 이곳에 서 있는지 응답하라고... 분명한 것은 눈도 흐려지고 허리도 구부정한 노인으로 변해 있다는 점이었다. 싫어도 어쩔수 없는 노릇이다. 얼굴엔 주름살과 검버섯도 늘어나고 벌써부터 야간운전을 꺼리는 노인네. 또 하나 30년 전엔 제법 꿈에 부풀어 있었다는 점이었다. 근데 나는 지금 무슨 꿈을 꾸고 있는가? 이민 올 때 가슴에 품었던 그 파아란 꿈은 그냥 허공에 부서져 물거품이 된 것일까? 시온의 골짜기 바위들은 변해 버린 내 모습에 그냥 ‘노 코멘트’였다. 이젠 인생의 사양길이라마음먹고 점점 포기하고 단념하는 것에 익숙해 지고 있는 나에게 아무 말도 걸지 않고 그냥 내려다 볼 뿐이었다. 네가 알아서 네 꼬라지를 파악하라는 눈치였다. 자이언 캐년 여행 중에 한국 사는 내 절친의 생일이라고 카톡이 일러 주었다. “생일축하한다, 친구야”란 멘트로 시작하여 생일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응답이 왔다. “우리의 시간은 어디쯤 머물고 있는 걸까? 귓전에 아직도 들리는 듯 그대 목소리. . 친구가 좋아 마음 닿는 곳이면 함께 걸었던 길, 갈현동교회, 서대문기숙사, 종로길 갈릴리다방, 명동 바로크 음악감상실, 삼청동길, 정동길, CBS 방송국, 대학로, 수유리.. 우리의 발자취 닿지 않는 곳이 없었던 그 수많은 길들, 그 길에서 누가 지금 자유하며 걷고 있는 걸까?” 아니 문단 근처에는 가 본 적이 없는 이 친구가 언제 시인이 되어 자기 생일날 나를 울리는 걸까? 오밤중에라도 벌떡 일어나 가고 싶은 곳이라면 함께 달려 나가던 그 수 많은 곳들을 떠올리게 하니 저절로 그리움의 눈물이 흘렀다. 확실히 나는 늙었나 보다. 돌아오는 길에 차에서 쉬지 않고 음악이 흘러나왔다. 운전사로 채용(?)되어 여행길 운전수로 변신한 딸이 틀어주는 음악이었다. 요즘 넥플렉스에서 ‘응답하라 1988’ 드라마를 보고 딸은 뿅 간 수준이다. 그러니 여행길에서도 그 드라마 OST만 흘러 나왔다. 공짜 운전수로 채용되었으니 꼼짝없이 들어주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노래중에 ‘그대 걱정하지 말아요’란 노래 가사가 또 내 가슴을 울렸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그런 의미가 있죠/우리 다 함께 노래합시다/후회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 후회 없이 꿈을 꾸었지만 꿈을 꾼 만큼 이루어진 것은 무엇일까? 아무 결실이 없고 무엇하나 자랑할 일 없어도. . 그러나 새로운 꿈을 꾸겠다고 말하라고? 지금 이 나이에 새로운 꿈을 꾸라고요? 소설가 황순원 선생님이 말한대로 “자네는 좋은 시인이 될 거야”, 그 꿈을 다시 꾸어볼까? 화가가 되겠다고 감신대에 중퇴선언을 했을 때의 그 꿈을 다시 꿔도 되는 것일까? 허기사 나이 80에 시집을 내고 출판기념회를 여는 노인네들이 허다한데 벌써 인생 종 친 것 처럼 늙은이 타령을 하고 있다니! 시온 골짜기의 바위들은 아마도 내게 그런 말을 하고 나를 집으로 돌려 보낸것 같다. “새로운 꿈을 꾸겠다고 말하라고. .” 그래, 새로운 꿈을 꾸어보자. 내 나이가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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