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성 목사의 복음자리 이야기)잣대가 흔들리고, 저울추가 기울면
2022/12/01 21:29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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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성 목사(브라질선교교회 담임)

 

 유권사님, 됫박질, 잣대질은 사람마다 동리마다 철따라 다릅니다. 무게, 부피와 길이의 정해진 기준이 흔들린다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갈까요? 권력과 주먹이 센 사람이 판치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무게, 부피, 길이와 우리 생활

 그런 가운데 옛날에는 어떤 가게 혹은 어떤 장에는 됫박을 후하게 쳐준다느니 박하다느니 하면서 후한 장을 찾아다니기도 했습니다. 또한 지금은 없어진 직업입니다만 장날마다 이장저장을 돌아다니며 됫박질로 먹고사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됫박쟁이라는 직업이 있을 정도면 거기에 알음알음으로 이윤구조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무게나 길이를 속이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듯합니다. 성경에서 무게와 부피와 길이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 번 나옵니다. “너희는 재판할 때나 길이나 무게나 양을 잴 때 불의를 행하지 말고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추와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힌을 사용하라” 그리고 나서 이렇게 당부하고 말씀하신 이가 누구인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나오게 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레19:35-36).”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당부하십니다. “너희는 내 모든 규례와 내 모든 법도를 지켜 행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이렇게 사는 것이 공정과 정의가 살아있는 사회, 상식이 통하는 사회입니다. 이런 나라를 하나님 나라라고 합니다. 이런 사회를 천국이라고 합니다. 이런 나라를 복지 국가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길이의 기준은 자입니다. “한자는 팔꿈치에서 손가락까지의 길이에 손바닥벌이를 더한 것(에스겔 43:13절)” 이런 기준을 제시하고 공정하게 지키는 것이 정의이며 그것을 따르지 않는 것이 부정의입니다.

 공정, 상식 그리고 신명(神命)

 공정은, 이 기준점을 서로가 인정하는 것이고 저울과 자와 되는 공정한 정부기관이 만들거나 검증해서 그 객관성을 유지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기준은 국제적이고 세계적인 공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저울을 분해해서 그 기준을 바꾸지 않도록 하는 장치들이 있는 것을 보면 서로의 이해관계를 위해서 바꾸고 싶은 유혹이 많다는 것을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신의 이름으로 모인 종교에도 이 잣대가 적용됩니다. 그 진리의 잣대를 벗어나면 이단이라고 말합니다. 부부지간에도 이 잣대가 있습니다. 벗어나면 불륜이라고 말합니다. 오죽 잘 벗어나면 신명으로 두 사람에게 선언합니다. “.....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막10:6-9)” 우리는 우리 삶에서 공정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이해관계로 인해서 그럴 수 있습니다. 인정 때문에 객관성이 무너집니다. 혈연이나 지연 학연이 공정과 상식을 벗어납니다. “우리가 남인가?”하면 다 통하게 됩니다. 심지어는 예수님의 제자들 사이에도 동기간이 같이 제자가 되어 밀고 당겨주는 혈연, 갈릴리 출신인가 아닌가 하는 지연이 통했으니 우리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잣대가 흔들리지 않도록, 저울이 기울지 않도록, 크기가 일정하도록 모두가 객관적인 마음가짐을 갖고 살아야 덜 혼란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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