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용주 목사(봉헤치로 제일교회 담임)
1. 제 2시대의 시작과 누메노르
제 1시대 말, 에아렌딜의 중보를 통하여 악마 모르고스를 공허로 내어쫓고 중간계에서 그 세력을 완전히 격파하게 된 ‘분노의 전쟁’은 회복될 수 없는 상흔을 남겼다. 『반지의 제왕』의 무대가 되는 땅 서쪽에 있던 큰 대륙 ‘벨레리안드’가 대홍수로 말미암아 서부대양 밑으로 가라앉아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것과 함께, 요정(엘프)들이 세웠던 도리아스와 곤돌린과 같은 위대한 왕국들과, 그들이 가꾼 수많은 숲과 정원들이 사라져버렸다. 살아남은 요정(엘프)들 대다수는 서쪽 천사들의 땅 발리노르로 돌아갔고, 아직 중간계에 남아 악의 세력에 대항하고자 하는 이들은 벨레리안드 중 유일하게 가라앉지 않은 ‘린돈’으로 피신하였다.
‘분노의 전쟁’은 주로 천사들인 아이누들과 요정(엘프)들이 주력이 되어 치러졌다. 하지만 악마 모르고스를 따라 타락하지 않은 세 가문 ‘베오르’와 ‘하도르’와 ‘할레스’ 집안에 속한 인간들도 천사들과 요정(엘프)들 편에 서서 싸웠다. 그 대가로, 그들은 서부대양에서 영원의 땅 발리노르에 가장 가까운 별 모양의 섬인 ‘엘렌나’를 영토로 하사 받았다. 이 세 가문의 인간들은 이 섬으로 이주하여 서부인들의 왕국을 세우니, 이것이 바로 훗날 ‘누메노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왕국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초대 왕으로 에아렌딜의 아들 엘로스를 왕으로 선출하였다. 그는 500살까지 살면서 410년 동안 그 나라를 다스렸다.
2. ‘중간계’ 약사 3: 아칼라베스
이렇게 요정(엘프)들의 타락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실마릴 보석 전쟁을 일단락한 톨킨은, 이어서 인간들의 이야기인 “아칼라베스”를 시작한다. 그는 인간을 요정(엘프)이 죽지 않는 것을 부러워하는 민족으로 설정한다. 인간들은 처음에 발리노르의 빛과 그곳에 사는 요정(엘프)들이 전해주는 지혜와 지식에서 큰 위로를 받았다. 그것을 통하여 “인간들은 모르고스의 속박에서 벗어나 어둠 속에 깃들어 있는 두려움을 잊었다.” 그러나 그들이 점차 강성하여, 누메노르 왕국이 마침내 중간계에서 가장 부강하고 아름다운 나라가 되었을 때, 그들은 조금씩 자신들의 유한성에 대한 불만을 가지게 되었고, 몇 세대가 지나지 않아 그것은 유일신 에루 일루바타르와 발리노르의 아이누들에 대한 의심으로 발전하였다. 그것을 알아챈 아이누들은 자신들의 전령을 보내어 인간들을 깨우쳤다.
“처음부터 너희의 죽음은 벌로 약속된 것이 아니다. 그 덕분에 너희는 이 세상을 벗어나고 떠날 수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 희망을 가지든 권태를 느끼든, 너희는 이 세상에 매여 있지 않다. 그러니 너희가 다른 이들을 부러워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 (…) 너희들의 고향은 이곳도, 아만의 땅도, 세상의 경계 안 그 어느 곳도 아니다. 인간이 창조되었던 순간부터 그 운명은 일루바타르의 선물이었다. (…) 일루바타르는 아무 목적이 없는 작정을 세우지 않으신다. 그렇지만 많은 세대가 지나야 그 뜻이 무엇인지 알려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너희에게만 알려 질 것이다. 그 어떤 아이누에게도 알려지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톨킨의 기독교적 인간관이 드러난다. 인간은 필멸자다. 그러나 그것은 유일신의 선물이다. 인간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만, 이 세상에서 난 것이 아니며, 죽은 후에 이 세상에서 해방된다. 그러므로 무엇도 부러워할 것이 없다. 이것이야말로 기독교인의 삶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