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길에서)구두
2022/04/28 23:2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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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순 권사(배우리한글학교장, 연합교회)

 

살아 갈 때에,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또 없는 대로 다 갖추어 놓진 못해도 별 지장없이 살아갈 수 있겠지만 이것만은 없으면 안 되고 없다면 불편할 것 같은 것이 있습니다. 신발장을 열어 급히 신을 꺼내려 하는데 이것저것 짝도 제대로 맞지 않는 신발들이 줄줄이 걸려 나오며 마구 쏟아집니다. 실내에서는 실내화, 비 오면 장화, 추운 겨울엔 부츠, 해변에선 샌들, 운동할 땐 운동화.... 상황에 따라 달리해야 하는 신들로 인해 신발장은 항상 만원입니다. 

 여러분은 몇 켤레의 신발이 있습니까! 한 켤레에 두 개씩이니 그 수가 좀 될 겁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칠 즈음이면 발에서 불이 납니다. 마네킹처럼 서 있지 못하고 움직이는 것은 내 무게를 버티는 신발 속에 발이 편하지가 않아서 그럽니다. 나를 위해 하루를 힘겹게 버티며 지탱해 준 신발이 고마운 건 사실인데 한시라도 빨리 벗어버리고 싶은 이 야멸찬 마음은 대체 무슨 반전인지요. 내일도, 모레도, 어쩔 수 없이 나의 일상과 함께 할 신발, 그 신발에 관한 얘기를 할까 합니다. 길을 걷다가 힐끔, 다른 이의 신발을 쳐다보는 일이 습관처럼, 하여간 열심히 쳐다봅니다. 오고 가는 무리 속에 각자의 신발들은 사람의 외모만큼 참 다양한 생김새입니다. 삶의 무게를 측량이라도 하듯, 어떤 이는 왼쪽으로 다른 이는 오른쪽으로 모양이 일그러진 그 모습대로 몸의 방향을 유지하며 자연스레 길을 걷습니다. 신발의 생김새 만으로도 그들의 삶이 어렴풋이 짐작이 되니 참 신기한 일입니다. 

 여자들은 신발이 참 많습니다. 옷 모양에 따라, 색깔에 따라, 상황에 따라...... 거기에다 두서너 개씩 덧 붙이니 신발장에 신발이 자꾸 쌓입니다. 편할 것 같아서, 예뻐서, 내가 입을 어떤 옷과 잘 맞을 것 같아서...... 여러가지 상황에 필요하다며 마련하지만  어느 것을 기준 삼아 신발을 택해야 하는 심리적인 고민도 한 몫을 하니 신발이 족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용성과 유용성, 게다가 미적 분위기까지 따지다가 결국 어느 하나를 포기하여 편한 쪽보다 어울림을 택할 때가 많지만  내 무게를 감당하며 하루를 인내한 내 발은 말이 아닙니다. 할 수 없이, 편한 신발은 아무래도 내 발걸음에 무리가 없는 익숙한 것이어야 하니까 발의 건강을 생각해야 한다며 결론을 내리지만 여지없이 내일도 고 놈(?)의 어울림이라는 걸 먼저 생각하겠지요. 구두와 관련된 문학작품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윤흥길-에서 구두의 쓰임을  이해해 보려고 합니다. 

 70년대의 산업화 시대에 비인간적이고 비 윤리적인 몰가치 현상으로 소외되고 병든 변두리 인생을 걷는 인간들이 생기게 됩니다. 주인공 [권씨]는 경제적 궁핍으로 단칸 방에 세 들어 사는 가난한 소시민으로 설정된 인물인데 집 안 살림과 어울리지 않는 아홉 켤레의 구두를 항상 반짝거리게 닦는 일로 자신의 자존심을 세우는 시대적 현실을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 따위 이웃은 없다는 걸 난 똑똑히 봤어! 난 이제 아무도 안 믿어’하면서 사라져 버린다. 아홉 켤레의 구두만 남긴 채.

 자신의 인생의 전부라고 여기며 소중히 간직한 권씨의 구두는 주인을 잃게 되며 소설은 끝이 납니다. 소설 속에 주인공이 지식인이라는 것을 대변하기 위해 혹은 자신의 자존심이라는 것을 지키기 위해 무언가를 해결책으로 내놓은 것이 구두였다는 것이 참 특별합니다. 

 길을 지나가다 우연히 쓰레기더미 멀찌감치에 버려져, 뒤집혀 있는 낡고 찌든 구두 한 짝을 보았습니다. 쓸모없게 되어 버려진 구두 한 짝! 구두에 담긴 숱한 인생의 얘기들이 구두와 함께 버려진 것 같았습니다. 나도 모르게 발 밑에 구두를 바라봅니다. 잠시 그 자리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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