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성 목사(브라질선교교회 담임)
유권사님, 해외살이는 모든 것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물건하나 사는 것부터 시작해서 사람 쓰는 일, 정보를 나누는 일 등등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신경이 곤두선 가운데 해도 늘 찜찜한 일투성이 입니다. 생활이 늘 긴장하게 만들고, 브라질 정착 과정이 늘 조마조마했고 그래서 무의식중에 긴장하고, 일단 모든 사람을 대할 때 나 아니면 적이란 삶의 방정식이 적용되고 있어서 관계가 갈수록 살벌해지고 친구가 되고 이웃이 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배신과 배반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게 되고 상대의 약점을 찾아 숨겨 비축해뒀다가 필요할 때 날선 공격 무기로 씁니다.
이민 사회의 현주소, 배신과 배반프레임
신앙생활도 개신교 한 교회, 가톨릭 한 교회에서 시작된 교회들이 의견이 다르면 토론하고 협상하고 주의 뜻을 찾아서 하나의 의견을 만드는 훈련이 되질 않아서 나와 의견이 다르면 제압을 하거나 찢어발겨 해결하는 적대시 프레임이 상식이 되었습니다. 이게 세포분열이 되듯 나눠져 너나 할 것 없이 하꼬방 같은 교회 수십 개가 된 것이 오늘날 전세계적인 기독교계의 현실이 되었습니다. 동남아의 경우 한국의 유명한 교회 목사가 다녀가면 교회가 하나 생긴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입니다. 우리 교단 교회가 그 도시에 있나 없나를 따지다가, 교파확장을 주님의 뜻으로 프레임 씌워서 개척을 하고 목회자를 보내다보니 주님의 교회가 아니라 교파의 교회, 큰 교회의 지 교회는 될지 몰라도 하나님의 교회가 되는 일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당연하다고 여기는 무식함이 주님의 몸 된 교회에 생채기를 냅니다. 한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교단 혹은 교회 차원에서 인구 분포를 조사하고 자립가능성, 선교 우선순위 등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지역교회와 협력해서 교회를 만들어가는 정책이 참 아쉽습니다. 한 도시에 한 한인교회도 없는 곳이 너무도 많은 상황인데 선교역량은 태부족이어서 늘 아쉽고 안타까워서 선교사들이 모이면 어떤 곳에 선교지를 세울까 하는 토론으로 밤을 새우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아서 늘 아쉬웠습니다. 자책하면서 하는 말이 선교지가 아니라 상파우르의 ‘오뚜기 마트’에 가면 선교사 몇 사람은 만난다는 말을 하면서 서로 웃습니다.
황금률을 천국 갈 때까지 차고 넘치게
내가 목회하는 곳은 한인인구 300여명이 깜비나스와 피라시카바 인근 도시 지역에 한국공단을 중심으로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깜비나스에서는 주재원 몇 명의 공명심에 깜비나스한인교회를 쪼개 신학교 건물에서 개척한답시고 주님의 뜻에 자기 으스대는 욕심을 숨기더니 어느 날 본사가 앞장섰던 주재원 집사를 한국으로 발령 낸 후 흐지부지 흩어졌던 일이 엊그제 같습니다. 또한 피라시카바에서도 작년에 교회가 하나 세워지며 샬롬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상파우르와 피라시카바에 두 샬롬교회가 있었다고 하네요. 본디 그 뜻이 평화일진데 샬롬이라고 쓰고 분열이라고 읽으며 피눈물을 흘리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결국 두 샬롬교회는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공중 분해되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온다 간다 말 한마디가 없어서 브라질 교계의 생태계가 이렇게 타락한 것인가 하는 자조를 한 적이 있습니다. 100년도 훨씬 전 구한말, 국운이 쇠퇴일로에 있을 때 조선 팔도에 선교사들이 앞다퉈 들어왔습니다. 각 교단의 선교부가 경쟁적으로 선교를 하다 보니 효율성도 떨어지고 겹쳐져서 선교의 역량을 발휘할 수 없었습니다. 선교사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원칙을 정했습니다. “한양, 평양 등 대도시는 모든 선교부가 활동한다. 강원도 황해도 충청도는 남북 감리교선교부가, 경상도 전라도는 장로교의 여러 개 선교부가, 동해안 쪽에는 침례교 선교부가 중심이 되어 선교한다.” 이런 선교사들의 원칙을 지켜본 한국인들도 “일 동네, 일 교회, 일 학교”운동을 실천했습니다. 한 세기도 더 지난 오늘날, 초기의 정책보다 훨씬 후퇴한 목사들과 평신도들의 선교 까막눈이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