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복 목사
의과대학에서 교수가 학생에게 질문했습니다. “한 부부가 있는데, 남편은 매독에 걸려 있고, 아내는 심한 폐결핵에 걸려 있습니다. 이 가정에는 아이들이 넷 있는데, 하나는 며칠 전에 병으로 죽었고, 남은 아이들도 결핵으로 누워 있어 살아날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부인은 폐결핵 가운데서도 현재 임신 중인데, 엄마 배 속에 있는 이 아이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러자 한 학생이 대뜸 소리쳤습니다. “낙태 수술을 해야 합니다.” 그때 교수가 말했습니다. “자네는 방금 베토벤을 죽였네.” 그렇습니다. 이 불행한 상황에서 다섯 번째 아이로 태어난 사람이 바로 베토벤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쉽게 생각하면 ‘이 아이가 태어나 무슨 큰일을 할 수 있겠는가?’ 싶어 포기하면 되는데 그 부모는 이 아이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낙태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부모라고요. 부모는 그를 낳았고 그를 유명한 작곡가 베토벤으로 키워 낸 것입니다.
저는 이런 베토벤을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등불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사야 42장 3절을 봅시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이 세상에서 희망이 없이 살아가는 불쌍한 사람들, 죄악의 어둠 가운데서 방황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사람이거나 시들어진 생명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아니 사람들 보기에 가치가 떨어져 보잘것없다고 여겨지는 사람이라도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꺾지 않으시고 끄지 않으시는 분이 계십니다. 이사야 42장 1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 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여기에 보면 ‘나의 종, 나의 택한 사람, 그에게, 그가’라는 단어가 누구를 말하고 있습니까? 바로 예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예수님께서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신다고요.
그럼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등불을 살펴볼까요? 상한 갈대가 어떤 것입니까? 갈대가 꺾였다고요. 상했다고요. 그러니 갈대가 쓸모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까? 그럼 꺼져가는 등불이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불이 거의 꺼져가면서 심지가 타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불꽃이 깜박거리며 심지가 그을음을 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타고 있는 불꽃은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그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자 그러면 이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등불이란 비유인데 누구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즉 우리를 향하여 ‘너희는 상한 갈대라, 너희는 꺼져가는 등불’이라고 말씀합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큰 타격을 입은 상태나 특별히 죄악으로 인해 영혼이 더러워진 우리 인간의 상태를 말합니다. 그리고 지금 코로나 19로 인하여 너무도 힘들어 지쳐 있는 우리를 향해 또 아무도 돌보지 않는 사람이거나 시들어진 생명을 가진 사람들, 아니 사람들 보기에 가치가 떨어져 보잘것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살 소망이 없는 사람들, 아무런 가치도 없는 사람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 더 쳐다보기도 힘들 정도의 사람들, 바로 우리를 가르켜 말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런 존재였다고요.
여러분에게 질문합니다. 그럼 이런 상한 갈대 같은 존재라면 꺾어 버려야 하나요? 이런 꺼져가는 등불 같은 존재라면 아예 꺼 버려야 하나요?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누구도 외면하지 않으시고 거부하지 않고 끝까지 붙잡아 일으켜 세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신다고요. 지금 우리가 소망도 없고 비전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눈앞이 캄캄한 가운데 지나고 있으면서 내가 상한 것 같고 꺼져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실제 상황이 그렇다고 해도 예수님은 절대 포기하지 않으신다고요. 예수님이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는데 우리는 왜 포기하려고 합니까? 하나님이 예수님이 상한 갈대라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등불이라도 끄지 않는다고요.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도 꺾이지 않고 꺼지지 않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예수님과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예수님과 연결되어 있는 자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꺾지 않으시고 끄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바로 연결성입니다. 핸드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아십니까? 이 사람들은 핸드폰의 Wi-Fi나 안테나 표시된 것을 눈여겨봅니다. 시내에 있다가 시골로 간다든지 아니면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든지 높은 산으로 올라간다든지 하면 안테나 표시나 Wi-Fi 표시에서 하나씩 하나씩 줄어드는 것을 봅니다. 그러면 불안해집니다. 연결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시내에 들어오면 빵빵하게 잘 터집니다. 연결이 잘 됩니다. 그러면 안심이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이와 같습니다. 멀어지면 불안해집니다. 더 심하면 죽습니다. 가까워지면 안심이 됩니다. 살아납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비전이 있습니다. 지금 “내가 상한 갈대가 아닙니까? 내가 꺼져가는 등불이 아닙니까?”라고 반문하시는 분 계십니까? 내가 지금 비록 상한 갈대 같고 꺼져가는 등불과 같다고 해도 예수님과 연결되어 있으면 꺾지 않으시고 끄지 않으십니다. 살리십니다. 기회를 주십니다. 토로나 19로 인하여 힘들고 어려움 속에 있는 여러분, 이런 주님을 붙잡고 바라보면서 힘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을 향한 우리 주님의 마음임을 아시고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 주님에게 두고 살아가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YouTube : 강성복목사 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