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자

 

언제나 제 몫을 감당하며 있는 듯 없는 듯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엄지처럼 “척”을 할 리도 없고 나설 일도 없으니까요. 틈새에 숨어있던 것이 어느 순간 반기를 들고나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간 저에게 무진 혹사를 당했다는 것입니다. 마구마구 사용해도 불평하지 않고 언제나 충실한 것인 줄로 알았습니다. 이 작은 지체 하나가 온몸을 뒤흔들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눈을 감고도 날렵하게 자판을 날아다니며 원하는 작업을 거뜬히 해내던 집게손가락이 더는 견디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소염제로 달래며 물파스로 문지르다 보니 매캐한 내음도 견딜 만합니다. 통증을 조금이라도 완화해주니 그러겠지요. 그런 것도 모르고 엄마 몸에서 배어나던 고약한 내음을 불평한 적이 엊그제 같습니다. 몇 날이 지나면 좋아질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시간이 길어지는 것을 보니 야무지게 고생을 할 것 같습니다.

 가능한 한 쉬어야 한다는데, 나를 위한 것들이야 미뤄두기도 하고 조심을 하겠지만, “엄마의 몫”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라 멈출 수가 없네요. 밑반찬을 몇 가지 만드느라 조심스럽게 움직여도 욱신거리는 마디를 조물조물 주물러 달래 봅니다. 굵어 볼일도 없었던 마디 위로 겨울 시내에서 빨래하시던 벌건 손마디가 스멀스멀 떠오릅니다.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어머니의 “약손”은 시리지도 않을 줄 알았습니다.

 그처럼 당신은 언제나 모든 것을 넉넉하게 이기고 견디는 버팀목이었습니다. 그러나 홀로는 산처럼 돌아앉아 속 울음을 울며 한 많은 세월을 살아내야 하였던 가녀린 “여자”였음을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어머니라서… 얼마나 많은 것을 삼키고, 견디고, 앙가슴에 고이 품어야 하였을지 감히 헤아려 보는 자리에 제가 왔습니다. 겨울나무처럼 바삭거리는 삭신을 뒤척이며 잠을 설치셨을 숱한 밤에도 앓는 소리 한번 들리지 않았던 연유를 알겠습니다.

 점점 장작처럼 뻣뻣해 간다는 정강이를 쓱쓱 문지르고 다독이며 새벽기도를 나서던 정갈한 모습이 눈에 밟힙니다. 소복이 눈을 뒤집어쓰고 돌아오시면서도 세상을 이긴 자의 승리의 함성 같은 미소를 보이셨지요. 그리하여야 하셨던 간절함의 의미와 세상을 얻은 듯한 환한 미소가 무엇을 말씀하는 것인지 알았습니다. 모든 것을 다 내어주고도 모자라서, 사그라지는 혼신을 다하여 끝까지 열어 두려 하셨던 그 길을 제가 걸어갑니다.

 천만 마디의 미사여구美辭麗句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이름 없고 빛도 없는 가련한 당신의 삶이 복음의 능력이었고 신앙의 실체였습니다! 좁은 길로 가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은총인지 알게 하시고, 하늘의 유업을 이어가게 하신 지혜롭고 현숙한 여인, 존귀한“어머니”! 당신이 시온의 대로를 열어가며 눈물 골짜기를 지나갈 때, 하늘은 그곳으로 많은 샘을 열어 이른 비로 복을 채워 주셨습니다.

 애초부터 “어미”는 목숨도 주저하지 않는 강인한 존재로 하나님의 다함이 없는 사랑을 몸소 보이는 작은 하늘인가 봅니다. 원망도 섭섭함도 모르고 자기주장을 하지 않는“등신처럼” 극진한 사랑만 주고 또 주셨습니다. 가슴에 묻었어야 할 그 숱한 말들은 못난 자식들의 행복으로 보상을 받고, 끝끝내 꺼내 놓지 못한 안타까운 사연들은 한 많은 별이 되어 청천을 떠돌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심한 세월은 저 혼자 갈 것이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나마저 훌쩍 데리고 흘러갔습니다. 한나절 꿈길에서 깨어나 보니, 어느새 자식들이 나를 걱정하는 자리에 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것저것 어눌해지는 것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지적하지 않아도 제가 엉뚱한 짓을 할 때마다 스스로 야단을 치며 “너는 도대체 왜 그러는지” 묻습니다. 어디서 아주 많이 들어 보신 이야기지요?

 가끔은 혼자도 머쓱해서 점점 닮아가는 거울 속의 모습에 계면쩍은 미소를 보냅니다. 그런 저를 바라보시며 여전히 박꽃처럼 웃고 계실 분이 무척 보고 싶습니다. 지금 창밖에는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비바람이 몰아칩니다. 그토록 모진 인생길을 묵묵히 걸어가시며 마주하셨을 온갖 두려움과 슬픔을 주님으로 춤이 되게 하시고, 베옷을 벗고 기쁨으로 띠 띄우시게 하신 오롯함을 배우며 조심스럽게 따라갑니다.

 어머니! 그리움 출렁이는 속내가 아픈 손가락처럼 마디마디 저립니다. 당신을 생각할 때마다 뙤약볕의 사막길을 오르내리던 한 여인의 막막함을 묵상하게 됩니다. 어린 소녀가 감당하기엔 얼마나 놀라고 두렵고 떨리고 버거운 일이겠는지요?  세기를 건너온 이야기이지만, 언제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합니다. 홀연히 구세주를 잉태한 작은 여인에게 세상은 정죄의 칼을 뽑아 들고 숨을 곳도 없이 몰아붙였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뜨거운 광야 길을 오르내렸겠지요. 어둠의 세력은 끝까지 메시아를 밀어내려 하였지만, 하늘을 품은 한 어머니의 지고한 사랑과 순종을 통하여 빈방도 없는 세상으로 “만 왕의 왕은 오셨고 온 땅에 구원은 선포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