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호영 목사(워커스미니스트리 대표)
나와 형은 연년생이다. 형이 18세 되던 해 아버지는 차를 사주셨다. 당시 우리 형제는 어릴 때부터 바느질 집을 다니느라 운전을 배워 주말만 되면 아버지 차에 눈독을 들였는데 마침 아버지가 낡은 76년 Fusca를 구입해 주신 것이다. 우리는 진지하게 차 상태를 관찰했다. 시동은 잘 걸렸다. 그런데 운전석 창이 열리질 않았고 조수석 문도 안 열려 뒷좌석에 타려면 운전석으로, 조수석에 타려해도 운전석으로 타야 했다. 기어도 잘 안들어간다. 몸을 오른쪽으로 비틀며 왼발을 최대한 뻗어 차바닥이 뜷어져라 밀어 클러치를 밟으면 들어간다. 또 기어 스틱 옆에 구멍이 있었는데 처음엔 차 내부인 줄 알았다. 그런데 밝은대로 가보니 아스팔트가 보인다.(그 덕에 우리는 쓰레기통이 필요없었다.) 또 핸들도 작고 뻑뻑해 주차를 하려면 엄청난 괴력을 발휘해야 했다.(그래도 여자만 태우면 비지땀 흘리면서 미소는 잃지 않았다.) 차를 조심스레 둘러본 우리는 한참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서로 눈빛을 확인했다. 수리할 곳도 많았고, 사실 수리할 가치가 있는지도 확실치 않았다. 녹슨 곳도 많아 새로 칠해야만 했다. 하지만 “야 우리 차다~~!”하며 우린 설명할 수 없는 희열에 호들갑을 떨며 소리를 질렀다.(좋기도 하것다..) 차를 칠하는 동안 별 상상을 다 했다. 저걸 타고 나가면 빛나는 태양이 반사되서(Azul Metalico였다.. Oh My..) 온 동네 사람들의 시선을... 그러면 그녀가..(왜 그 땐 늘 그녀였는지..) 당시는 그래봐야 그게 Fusca라는 현실이 도대체 입력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웃긴다. 그래도 심심하면 카세트 테이프를 씹어 잡숫는 전축 하나 달고는 나름 상당한 자부심으로 젊음을 즐겼다.
연말 연시라 조금 바쁜 척 하다 글 소재가 마땅치 않아 잔머리를 굴렸다. 옛 글을 Remodeling할 사악한(?) 생각으로 옛 문서들을 뒤적였다. 나는 나름 옛 글들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재미있다 응원해 주시는 분들도 계시고, 또 책으로 엮어보는 것이 어떠냐는 말에 귀가 팔랑일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확인을 해보니 ‘아 이걸 신문에 냈다고.. 아 챙피해.. 무슨 생각을 한거지 당시?’. 도대체 쓸만한 글은 고사하고 유치해 읽을 수가 없다. 그리고 많은 깨달음이 갑자기 머리와 가슴에 훅 들어온다. ‘아.. 그게 다.. 인사말이었구나.. ba.. bo..”
요즘 자주 ‘욱’한다. 청년들에게, 성도들에게, 사역하는 분들께도. 잘못되었다, 진리가 아니다 생각하면 좀 거침없어졌다. 그래서 전엔 ‘친절한 호영씨’였는데 요즘은 ‘까칠한 목사님’이 되어버렸다. 솔직히 좋은 리더가 되려면 악역은 필수다 라며 오래 고민한 뒤 그렇게 한 것은 맞지만, 사실 ‘이제는 한마디 해도 된다’, ‘이쯤되면 야단칠 수 있다’는 마음이 언젠가부터 자리잡혀 버린 것 같다. 그러니 요즘 사람들이 슬슬 나를 피한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 속에서 자괴감을 느낀다. ‘내가 원하던 것이 정말 이것이었던가?’ 오직 가르치겠다는 목적(누가 너보고 가르치래?)으로 악역을 감당하면서 과연 지금 나는 내 주위 사람들에게 복음과 사역에 대한 열정을 심어주고 있는가? 아니면 일 잘하기 만을 강요하다 오히려 내가 변질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언젠가 털털거리는 고물 차를 타면서도 리무진이 부럽지않던 시절 젊은의 본질을 잃지 않았던 것처럼 지금 나도 복음의 참 본질을 누리는 자로 다시 거듭나고 싶다. 구원의 은혜에 펑펑 눈물 흘리며 기도하면서 작은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면서도 기뻐 감동하던 그 초심으로 2019년이 새롭게 펼쳐지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