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용주 목사의 문화탐방)영화 속 구원의 신앙 28: 매트릭스(28)
2026/04/11 02:57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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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용주 목사(봉헤치로 제일교회 담임)

 

 모피어스와 네오의 선택(1): 모피어스의 선택(1)

 싸이퍼의 배신으로, 요원들은 모피어스 일행의 위치를 추적해냈다. 요원들은 주변의 사람들을 사용하면서 그들을 추격한다. 그들 중 어떤 이 - ‘생쥐’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항상 어린애 취급을 받는 - 는 자신이 가진 무기들을 최대한 사용한다. 요원들의 관심을 끌어 네오와 다른 이들을 무사히 피신시키기 위해서다. 물론 이것은 희생을 수반한다. ‘빨간 원피스의 여인’을 창조한 ‘생쥐’는 엄청난 양의 총탄을 맞고 처참하게 살해된다. 

 모피어스 일행은 배수관이 있는 벽 안으로 들어가 몸을 숨긴다. 그런데 그 벽을 타고 내려가는 도중 싸이퍼가 재채기를 하는 바람에 - 아마 일부러 그런 것 같다 - 그들의 위치가 발각되고 만다. 절체절명의 순간, 모피어스는 괴력을 발휘하여 벽을 뚫고 요원들을 저지한다. 그는 세 명의 요원 중 리더 역할을 하는 자를 사정없이 공격하고는 그의 목을 있는 힘을 다해 조른다. 그러나 조금도 힘들어하는 기색도 없이, 아니 미소까지 띠며 요원은 말한다. “위대한 모피어스. 드디어 만났군.” 모피어스는 묻는다. “그러는 너는?” “스미스. 스미스 요원.” 요원은 답한다. 그러자 모피어스가 말한다. “나한테 너희들은 다 똑같아.” 

 그러고서 둘 사이에 격투가 벌어진다. 그런데 모피어스가 밀린다. 아니, 요원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요원은 그를 여유 있게 제압하고, 경찰들에게 연행을 명령한다. 그러는 동안, 일행은 무사히 귀환하였다. 그들과 함께 도망치던 싸이퍼는 도중에 어디론가 사라졌다. 

 여기서 우리는 모피어스의 선택을 볼 수 있다. 물론 그는 모두를 살리기 위해서 희생한 것이었지만, 그러나 그 중에서도 그는 네오를 살리기 위해서 희생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 지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다. 

 오라클이 네오에게, ‘한 손에는 네 생명을, 다른 한 손에는 모피어스의 생명을 쥐고 있다’고 한 말이 오직 네오에게 한 것이었을까? 모피어스에게도 동일한 말을 한 것은 아니었을까? 

 만일 그랬다면, 모피어스는 자기 생명보다 네오의 생명을 더 귀하게 여겼다는 것이 된다. 한 손에 있는 자기 생명을 던져서라도, 두 손 모두를 사용하여 네오의 생명을 지키겠다는 태도인 것이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새찬송가 94장, 통일찬송가 102장)라는 찬송이 있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과 바꿀 수 없네. (…)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이 세상에서 나를 자유롭게 만든 구세주를 이 세상의 것들과 바꿀 수 없다. 이 세상의 것들은 육신의 욕망, 눈의 욕망, 이생의 자랑이다. 이런 것들은 이 세상에서 온 것으로, 이 세상과 함께 다 지나간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히 거하는 참 부요이다. 

 성경 강해설교로 유명한 영국의 스퍼전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들을 한데 모아서 예수님께 바쳐도, 그것은 그분의 영광의 왕관에 보석 하나 보태지 못합니다.” 비교가 안 되는 것이다. 

 이러한 예수님을, 한 손에 이 세상의 것을 쥐고서 붙들 수 없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눅 9:62).” 

 네오의 생명이 자기 생명보다 훨씬 귀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사실을 신뢰하기 때문에, 모피어스는 두 손으로 그의 생명을 붙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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