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성 목사(브라질선교교회 담임)
유옥순 권사님, 새해도 평안하신지요? 새해가 되면 참 여러 가지 일들이 신년에 맞춰 바꿀 것들이 많습니다. 우선 달력을 새해 것으로 바꿉니다.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식구들, 교우들의 생일을 새 달력에 표시합니다.
2025년 새 달력에 식구들 생신 표시해놓기
제일 먼저 새 달력에서 주목해야 할 이름이 아내입니다. “1월 11일 11시” 그리고 이어서 장인어른 1월 25일, 그리고 달력을 넘겨가며 4월 15일, 9월 25일, 11월 21일을 표시하면 처가식구들 생신이 정리가 됩니다. 나의 친정, 아내의 시댁은 아버지 정헌채 장로가 추석 지낸 후 사흘 후인 음력 8.18일을 시작으로 12월 31일 큰딸 다운이, 1월 15일 사위 나일즈, 1월 26일 아들 용기를 비롯해서 여동생 찬숙이 1월 29일, 남동생 찬웅이 12월 24일입니다. 우리 식구들의 생일이 12월과 1월에 몰려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유권사님, 연 초에 달력과 수첩에 옮겨 적으면서 평소에 십자가를 만들어 메시지를 전하시는 존경하는 김홍한 목사가 페북(facebook)에 올린 예배에 관한 글을 자세히 읽으며 격한 공감을 하게 되어 허락도 안구하고 퍼 나르게 되었습니다.
예를 갖춰 절하는 것이 예배(禮拜)다. 유교에서는 절하는 것이 생활화되었으며 이슬람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절하는 시간이 정해있다. 불교는 수십 번에서 수백 번 절을 한다. 절을 많이 하는 것을 비하해서 절간이라고 하기도 한다. 기독교는 절을 하는 대신에 무릎을 꿇는다. 불교는 진리가 마음에 있다고 해서 심학(心學), 기독교는 진리가 말씀에 있다고 해서 복음(福音)이다. 유교는 행함에 있다고 해서 도학(道學)이다. 그리고 그 행함이 드러난 것을 예(禮)라고 한다. 불교가 심학이라고 해서 말씀이 없는 것이 아니고, 예(禮)가 없음도 아니고 기독교가 복음이라고 해서 마음이 없고 행함이 없는 것도 아니다. 상대적으로 다를 뿐이다.
한평생 예배자로 서는 귀한 일
기독교는 말씀을 강조하다보니 마음이 소홀하고 행함이 소홀한 면이 없지 않다. 특별히 오늘처럼 삶의 환경이 입식생활보편화로 인해서 무릎 꿇는 기회마저 사라지고 있기에 마음도 멀어진다. 기도할 때 두 손 모우는 합장(合掌)도 사라졌다. 불교인들이 합장을 하는 모습과 비슷해서 꺼려하다가 사라진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절도 안하고 무릎을 꿇지도 않고 합장도 하지 않는 기독교인에게 외적인 경건은 찾아보기 어렵다. 형식적인 경건을 만들자는 것은 아니지만 경건의 모습은 생활 속에서 저절로 만들어진다. 형식적인 예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유가의 제례(祭禮)는 법이 아니다. 그래서 가문마다 지방마다 제주마다 다르다. 그래서 제법이 아니라 제례라고 한다. 유일한 법이 있다면 정성을 다한다는 법이 있을 뿐이다. 혼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예배도 마찬가지다. 법이 아니기에 다양한 예배형식이 존재한다. 다만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마음만 귀한 것이다. - 김홍한(대전에 거주하는 목수일하는 목사) -
유권사님, 한평생 예배를 인도하면서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정성을 다해 드리므로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예배를 드리고 싶습니다. 금년뿐만 아니라 한평생 이 과제를 생각하며 금년 한해를 출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