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용주 목사(봉헤치로 제일교회 담임)
캐스피언: 선과 악, 신앙과 불신
난쟁이 니카브릭이 아슬란의 부활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슬란이 부활했는지 그렇지 않은지가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니아다. 그는 악한 인물이 아니다. 단지 대단한 애국자일 따름이다. 그래서 텔마르 인들을 나니아에서 쫓아낼 수만 있다면, 모든 반-텔마르 세력과도 얼마든지 손을 잡을 수 있는 자이다. 그것이 심지어 하얀 마녀라 할지라도. “나는 나니아로부터 저주받은 텔마르 야만인들을 쫓아내 버리거나 그들을 완전히 때려부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사람이든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믿겠소. 사람이라도 좋고 아니라도 좋소. 아슬란이건 혹은 하얀 마녀이건 상관 않겠소.”
물론 니카브릭의 말이 옳을 수도 있다. 우선 텔마르 사람들을 때려부수고 나서, 반-텔마르 대의에는 협력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친-나니아는 아닌 세력들을 하나씩 때려부수면 된다. 그러나 그는 두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첫째, 나니아는 아슬란에 의해 창조되었기 때문에, 오직 아슬란이 수여한 대로의 자유를 누리며 그의 방식대로만 적과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나니아를 사랑한다면서, 아슬란이든 다른 무엇이든 믿는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것은 나니아의 창조주를 부인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그로부터 지음을 받은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다. 이것은 지독한 자기 모순이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어리석음이다.
둘째, 하얀 마녀가 텔마르 사람들을 쫓아내는 것에 도움을 줄 수 있다 해도, 그녀는 ‘모든 자유 나니아 사람들의 가장 사악한 적이자 지독한 압제자’이다. 그러한 사악한 폭군은 언제든지, 아무런 이유 없이 니카브릭 자신을 파멸로 몰고 갈 수 있다. 그런데 그는 과거를 왜곡하면서까지 그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우리 난쟁이들 하고는 사이 좋게 지냈습니다. 난쟁이로서 나는 당연히 난쟁이들 편에서 난쟁이들을 돕겠습니다. 우리는 하얀 마녀를 두려워하지 않아요.” 요컨대, 그는 그런 사악한 일들이 자기에게 일어나지 않기만 하면 되고, 설사 그런 일이 벌어진다 해도 난쟁이들이 다시 함께 일어나 그녀와 싸워 물리치면 된다는 식이다. 마치 그들에게 그만한 능력이 있기나 한 것처럼. 이것은 지독한 이기주의이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교만이다.
의외로, 니카브릭과 같은 유형의 기독교가 꽤 많다. 유럽 중세 시대에, 지상에 기독교 외 다른 모든 종교는 거짓 종교이므로 이 땅에서 제거해야 한다는 ‘성전사상’이 기독교인들 사이에 널리 펴졌다. 그리고 이것이 십자군 전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 결과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천주교 교황의 정치권력과 압제는 더욱 심해져서, 중동의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고, 나중에는 유럽의 수많은 결백한 사람들을 마녀로 몰아 화형장으로 보냈다. 이것이 과연 교회일까?
한국 일제 시대에 기독교 탄압이 극심해지자, 교회를 지키자는 미명 하에 당시 개신교 교단 총회들은 신사참배가 단순한 국민 의례이며 우상숭배가 아니라는 결정을 내렸다. 더 나아가, 태평양 전쟁에 써 달라며 일본군에게 전투기 한 대를 헌납한 교단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일왕의 신사에다 일본종교식으로 제례를 드리고 일제에 잘 보여서 지켜진 교회가 과연 교회일까? 교회를 지키는 것은 오직 교회의 창조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방식, 성경의 방식으로만 해야 한다. 그 외의 방식, 엉뚱한 방식이 아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