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용주 목사의 문화탐방)나니아 연대기: 구원 그 이후 13
2024/03/07 22:02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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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용주 목사(봉헤치로 제일교회 담임)

 

 아슬란(11): 그림자 나라

 회피로 얻는 안온함에는 참 행복과 참 자유가 없다. 그러므로 이토록 고귀한 가치를 앗아가려고 다가오는 적들 또는 문제들을 회피할 것이 아니라 맞닥뜨려 싸워야 한다. 싸워서 지켜야 한다. 

 그런데 왜 이러한 싸움이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 일어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아직 완전하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죄악으로부터 회복되어가는 과정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은 완전을 향해 가고 있다. 언젠가, 모든 것이 분명해질 때가 온다. 그 때까지, 끊임없이 싸우며 나아가야 한다. 그 날은 반드시 온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 

 그렇다. 세상은 지금은 희미하고, 지금은 부분적이다. 그래서 루이스는 이것을 ‘그림자 나라’라고 불렀다. 아슬란은 ‘나니아’라는 이상적 세상을 만든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성장하고 완성되어야 하는 나라를 만들었다. 그런데 도중에 죄악이 끼어들었고, 온 피조세계에 퍼져버렸다. 그래서 아슬란은, 비록 죄로 물들었지만 자기가 창조한 이 세계를 버리지 않고, 구원자가 필요한 이 세계를 자기 목숨을 내어놓아 구원했다. 그리고 부활함으로써, 위대한 구원을 완성하였다. 

 이제 그 땅의 거주민들은 창조주를 또한 구세주로 알고, 그를 사랑하는 것을 배우고, 훈련을 통하여 경험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그들은 나니아를 사랑하게 된다. 아직 완전하지도 않고 또 죄악에 물들어 있지만, 죄악이 완전히 제거되고 완성될 나니아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아직 그림자같이 희미하지만, 언젠가 온전해질 것을 바라기 때문이다. 

 『나니아 연대기』 제 7권 「마지막 전투」에 나오는 유니콘 주얼은 완성된 나니아에 도달하여 감동에 찬 고백을 한다. 

 “드디어 본향에 왔습니다. 이곳이 진정한 내 땅입니다! 이곳이 내 고향입니다. 지금까지는 잘 모르고 지냈지만 평생동안 우리가 구하던 땅입니다. 우리는 옛 나니아가 가끔씩 이곳과 비슷해 보였기 때문에 그곳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 더 높은 곳으로, 더 깊은 곳으로!” 

 그 날은 반드시 온다. 아슬란은 그것을 ‘축제의 시작’이라고 부른다. 그 날에, 나니아의 말하는 동물들에게는 ‘아슬란’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알려지신 그가 드디어 실체를 드러낸다. 

 “이제는 다 끝난 거지. 축제가 시작된 거야. 꿈은 끝나고 이제는 아침이 된 것이란다.” 그 말을 하는 아슬란은 더 이상 사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더 이상 사자처럼 보이지 않았다면, 누구처럼 보였다는 말인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다른 이름으로 존재하는 이, 나니아에서 그에 대해 조금 알면 우리 세상에서 더 많이 알 수 있는 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그분, 죄악에 물든 온 세계를 사랑하셔서 구하시려고 친히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분, 죄악과 싸워서 참 행복과 참 자유를 지키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그분, 그리고 마침내 다시 돌아오셔서 천지만물을 완성하실 그분이다. 결국 루이스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주기 위해 『나니아 연대기』를 쓴 것이다. 그리고 그분 안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알려주기 위해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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