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길에서)빗질
2023/12/22 00:47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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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순 권사(배우리한글학교장, 연합교회)

 

 하루의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하는 일들은 누구나 대개 비슷하다. 몸 단장이 우선일 수도 있고 간단한 요기를 하는 일이 시작이 될 수도 있다. 건강상 아침 커피를 마시는 것이 좋다, 나쁘다 분분하지만 습관적인 행위로 늘 커피와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상가들 특히 바(bar)는 문을 열기 시작하면 대부분 밤 새 바람에 흘러 들어 온 널 부러진 쓰레기를 정리하려는 빗질이 시작된다. 나무 숲이 우거진 한적한 시골의 마을, 정원이 갖추어진 고급 주택가가 아닌 이상 나뭇잎을 치워야 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계절의 변화에 따른 이 일도 만만치 않게 있긴 하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는 시기여서 아직까지는 길가에 나뭇잎이 떨어져 보행에 방해가 되지는 않지만 고국의 봄 꽃, 혹은 가을의 낙엽의 향연을 생각하니 글을 쓰게 되는 감이 온다고 할까?

 걸인들이 길거리에 쌓아 둔 쓰레기 더미를 헤쳐 놓은 일들만 없다면 그런대로 길거리는 내가 밟을 곳을 정해 보행할 수 있지만 자연적으로 시간이 지나 제 몫을 다한 나뭇잎이나 작은 열매들이 떨어져 있다면 어쩔 수 없이 밟고 지나가야 한다. 피해서 지나가는 일이 더 어려울 수도 있다.

 머리 결을 혹은 머리를 가지런히 정리하기 위해 빗질을 하고 나면 개운하고 상큼하다. 흐트러진 쓰레기를 치우는데도 빗질이 필요하다. 내가 하는 일이라면 고작 빗자루로 공장 앞에 종이 조각이나 작은 쓰레기들을 치워 길가에 모아두는 일이다. 이후에는 환경미화원(한국식으로) 의 마무리로 정리가 된다. 빗질을 하는데 그리 어렵지 않은 것은 치우는 쓰레기가 가볍기 때문이다.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종이 조각을 쓸 때는 빗자루에 힘을 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작더라도 돌멩이를 치울 때는 손에 힘을 주어야 잘 쓸린다. 상황에 따라 나의 손놀림이 달라지는 것이다. 같은 일이라도 어떤 경우에 따라 다른 행동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쓸데없이, 쓸 데 없는 일에 힘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가볍게 혹은 힘을 가해 일을 처리하는 판단력은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생각이 빗질을 하며 뚜렷해 진다.

 봄에 한 번, 가을에 한번 한국 여행을 한 적이 있다. 봄은 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정취가 남다르다. 특히 봄에 내리는 벚꽃은 봄비와 같고 가을의 낙엽은 낭만 그 자체다. 벚꽃은 나무에 달렸을 때나 또는 바람에 떨어져 흩날릴 때도 너무 아름답다. 하지만 떨어진 꽃잎이 하루 이틀 쌓이게 되면 까만 색으로 변해 처음의 모습은 간데 없다. 이후에는 치우는 사람의 사투가 시작된다. 거의 한계절의 절반 이상을 이 일에 매달린다고 한다. 한참을 쓸어 모아도 바람이 한번 지나가면 다시 흩어져 다른 곳에 쌓이는 꽃잎들을 다시 모아야 한다. 속상해 한다거나 원망한다면 이런 일을 할 수 없다고 고백한다. 시작은 어여쁜데 결과는 우울한 꽃잎인 것이다. 꽃들이 가지런히 떨어져 쌓이는 법은 없다. 내가 편히 길을 걸을 수 있다면 누군가 나의 지나는 길을 말끔히 정리했기 때문이다. 

 이진옥의  시, ‘참빗’ [할머니의 앞 모습보다 뒷 모습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까닭도 바로 머리를 빗는 모습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참빗으로 가지런히 머리를 빗질하는 할머니의 정갈함이 담백하게 느껴진다.

 2024년이 곧 다가 온다. 주위에 있는 모든 이들이 편히 길을 갈 수 있도록 빚자루를 들 용기만 있다면 아름다운 꽃들의 낭만을 지키는 자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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