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길에서)향기
2021/12/16 23:3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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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순 권사(배우리한글학교장, 연합교회)

 

조금은 한가해진 시간이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해야 할 일들이 먼저 와 마중한다. 하루 하루의 계획을 세워 방학 숙제를 해야 하는 초등학생도, 수험생도 아니건만 나의 일상은 늘 미리 예정된 일정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와 같다. 삶의 유형은 제각기 달라 어떤 틀이 짜여진 것은 아닌데 대부분의 인생길에는 공통적인 말이나 일들이 비슷하다. 언제부턴가 사람들과의 화제거리가 대부분 자녀의 결혼 얘기나 손주의 출산이더니 이젠 건강 백세에 합류하여 그 대열에서 은근히 건강을 챙기는 속물 근성을 슬쩍 드러낸다. 텔레비전을 보아도 제목만 살짝 다를 뿐이지 온통 건강에 관한 얘깃거리를 그게 그거라 하면서도 채널은 고정시킨다. 그 중에 대세는 역시 건강 음식 얘기다. 현 시대에 맞춤형 볼거리라 그런지 몰라도 아무튼...... 

 어느 방송에선 이런 음식이 좋다 하고 또 다른 곳에선 그게 좋지 않다고 한다. 이 방송 저 방송 다 섭렵하고 알아서 챙기라는 말로 숙제를 주는 것 같다. 웬 요리 연구가가 그렇게 많은지, 요리보다 인기 요리인의 입담이 음식보다 더 맛있게 느껴진다. 요리 연구가란 말이 붙을 만 하다. 그들의 끝도 없는 수식어는 요즘 말로 장난이 아니다. ‘소금을 뿌린다’라는 말도 ‘소금을 뿌려 주세요, 넣어주세요’하지 않고 “소금을 두 손가락으로 잡힐 듯이 살짝 집어 약간 비틀 듯이 비비면서 살살 뿌려 주세요, 그럼 간이 골고루 배어 얼마나 맛있게요” 결국은 소금을 뿌리라는 건데 한참 만에 뿌려지는 소금 설명 끝에 맛있는 음식이 상상이 된다. 약간 중독성의 수준에 도달한 것 같다.  

 문형동 씨의 수필 [국물 이야기]에는 향수보다 더 강한 음식 향내가 물씬 풍겨 온다 이미 음식을 다 맛본 느낌이다.

 [우리의 밥상에는 밥과 함께 국이 주인이다. 봄이면 냉잇국이나 쑥국의 향긋한 냄새가 좋고, 여름엔 애호박국이 감미로우며, 가을엔 뭇국이 시원하다.그리고 겨울이면 시래깃국과 얼큰한 배추김칫국이 있어서 철 따라 우리의 입맛을 돋운다. 가을 뭇국은 반드시 간장을 넣고 끓여야 제 맛이 나고, 겨울 시래깃국은 된장을 풀어야 구수한 맛이 돈다. 사람들이 지닌 성품과 애정도 이처럼 사계절의 국물 맛과 같지 않을까?]   

 사람들의 성품을 국물 맛의 향에 비유했다. 향이 없는 사람은 없다. 반드시 각자에게 풍기는 독특한 향이 있기 마련이다. 향이 국물에서 우러나듯 우리 속에서도 향이 우러나온다. 그 향을 한 번 만들어 보자. 좋은 말로 인격의 향기를, 주는 것을 즐기는 후한 향기를, 좋은 글을 읽음으로 늙지 않는 영혼의 향기를, 그리고 기도하는 향기를...... 음식에 넣는 양념들은 향내로 음식의 풍미를 더욱 돋우는 맛의 여운을 남기지만 몸에 뿌리는 향수의 향기는 일시적이다. 

 이제 끊임없이 솟아내는 내 몸의 향수를 만들어 보자. 닫힌 마음 크게 열어 새벽 공기를 조금 넣고, 그리운 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추억의 그림자도 조금 넣고, 어제 밤 보았던 요리연구가의 달콤한 말도 한 스푼 넣고...... 생각해보니 내 주위에 좋은 향기를 만들 재료가 너무나 많다. 억지로 나의 향을 감추려고 뿌리는 물질의 향수보다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의 향기를 만들어 보자 그리고 마음껏 뿌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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